입력 : 2017.11.09 09:50

'21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로 통하는 독일 출신의 디아나 담라우(46)가 오는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한다.
1971년 독일의 남동부 작은 마을 귄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담라우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밴드를 조직해 록 음악을 하기도 했다.
인생을 바꾼 건 12세 때 본 오페라 영화 '라 트라비아타'였다. 여주인공 '비올레타' 삶의 환희와 절망을 너무 실감한 나머지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15세 때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역 '일라이자' 역을 맡아 처음 무대에 선다. 하지만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중, 성대에 이상이 생겼다. 그러나 끈기를 갖고 수술 없이 대체요법으로 성대를 회복시켰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은 담라우에게 변곡점이 된 캐릭터다. 이 작품으로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2007~2008년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과 함께 파미나 공주를 동시에 연기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또한 2011년 10월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호프만의 이야기'에서는 극 중 4명의 여자배역 줄리에타, 안토니아, 올랑피아, 스텔라를 모두 혼자서 맡아 세계 오페라계에 강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마침내 201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 그녀가 12세 때부터 꿈꿔 온 비올레타를 연기하게 된다. 출산 후 5달 만에 복귀한 그녀는 풍만한 곡선을 지닌 새빨간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서 멈출 줄 모르는 광란의 기교로 1막을 집어 삼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메트로폴리탄은 물론 라스칼라, 비엔나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오랑쥬 오페라축제 등 세계 유수의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오페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답게 종횡무진했다.
이번 내한은 담라우의 드높은 명성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나는 꿈속에 살고 싶어요', '라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인가',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 등 그녀의 대표 레퍼토리가 총망라된다. 첫 내한에 대한 설렘을 갖고 있는 그녀를 공연기획사 코리아아트컴퍼니를 통해 먼저 e-메일로 만났다.
Q. 드디어 첫 내한공연이다. 이렇게 내한이 늦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A. "스케줄이 아주 빠르게 채워지기도 하지만 사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있기 때이다. 짧은 콘서트를 하러 멀리 여행을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내 아들 둘이 여행을 다녀도 될 만큼 나이가 찼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신나는 아시아투어에 참여할 수 가 있게 됐다."(디아나 담라우에게는 7·5세 아들 2명이 있고, 모두 홈스쿨링을 한다.)
Q.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와 함께 '세계 소프라노 3대 디바'로 불린다.
A. "과찬의 말씀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확실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Q. 이번 내한에서도 아리아를 들려주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대표 캐릭터다. (화려한 음색과 기교가 특징인) 레제로 콜로라투라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비올레타 역을 소화하기 위해 소리가 깊고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던 것으로 안다. 노력의 과정과 비올레타를 성공적으로 소화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A. "비올레타 역은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좋아 보인다 또는 슬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역할이 전체 오페라 안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여정과 같다. 지혜롭게 노래하는 것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필요한 점이다. 그 다음이 리릭하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가 반드시 위와 같은 일련의 요구사항들을 다 소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점은 무대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것들, 그녀만의 드라마를 완전히 전달하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로서 분할 준비가 됐는지 여부다. 비올레타를 맡기 위해 좀 더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역할은 내게 정말 소중했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데다 사랑을 찾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25세 젊은 여인이 이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Q. 당신에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역시 특별한 작품이다. 당신과 '밤의 여왕'은 동격처럼 느껴진다.
A. "밤의 여왕은 가장 매혹적인 역할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노래와 가장 강렬하고 뛰어난 드라마와 극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두운 힘을 지닌 미스터리 한 그녀가 등장하기를 모두가 객석에서 숨죽여 기다린다. 악마적인 에너지와 파워를 가진 비할 데 없는 순간의 경험을 하기 위해 아주 빠르고 높은음 투성이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 난 영원히 밤의 여왕을 사랑할 거다."
Q. 성악가에게 목 관리는 험난하고 그 만큼 중요하다. 당신만의 목 관리 비결이 있나? 앞으로 또 다른 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도전하고 싶은 배역은?
A.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라는 악기는 교체할 수 없다. 내 목소리를 위한 레퍼토리를 맞출 때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다. 공연 전에는 반드시 성대를 충분히 쉬게 하고, 에너지를 아껴둔다. 하지만 투어를 다니고 끊임없이 세계의 부름에 따라 연주를 하는 사람에겐 관리가 쉽지 않다."
Q. 객석에서 당신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관객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A.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물론 청중이 웃을 때도 마찬가지다. 진지하게 사람들이 그 순간 나와 함께하고 있고,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말과 음악에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방과 같다. 내가 노래를 하고 있는 이유다!"
Q.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힘든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언제 가장 힘들었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A.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노래를 공부하던 시절에 위 수술을 했을 때다. 수술 때문에, 삽관을 했어야 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깨어나 보니 성대에 물혹이 생겼다. 건강을 되찾기 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7명의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았다. 정말 많은 치료를 받았지. 성대에 절대 칼을 대지 않으리라 마음에 수술적인 요법은 거절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성악가들이 절대로 성대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 수술을 거부하는 나를 보고 많은 분들께서 성악가로서의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 나아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Q. 남편인 베이스 바리톤 니콜라 테스테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부부가 함께 투어를 다니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A. "이번 투어는 우리에게 꿈과 같은 무대다! 나와 남편은 아시아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좀 더 큰 세상을 보고 완전히 흡수했으면 한다. 또한 함께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쁜 일이다. 베이스 바리톤과 소프라노는 무대에서 사랑의 듀엣신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거나, 축복하거나, 도와주거나, 아버지와 같이 보호해주는 그런 연기들을 하면서 무대를 즐기고 있다."
Q. 당신을 롤모델로 여기는 한국의 후배 성악가들을 위한 조언을 준다면.
A. "'노래하는 것을 즐기세요!' 이 말은 (캐나다 출신의 바리톤) 제럴드 핀리가 젊은 성악도들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들은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이 가장 좋은 조언인 것 같다. 정확한 딕션, 테크닉적인 어려움 해결 등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
Q. 이번 내한에 대해 한국 청중이 무엇을 기대하면 좋나?
A.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달라!"
1971년 독일의 남동부 작은 마을 귄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담라우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밴드를 조직해 록 음악을 하기도 했다.
인생을 바꾼 건 12세 때 본 오페라 영화 '라 트라비아타'였다. 여주인공 '비올레타' 삶의 환희와 절망을 너무 실감한 나머지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15세 때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역 '일라이자' 역을 맡아 처음 무대에 선다. 하지만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중, 성대에 이상이 생겼다. 그러나 끈기를 갖고 수술 없이 대체요법으로 성대를 회복시켰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은 담라우에게 변곡점이 된 캐릭터다. 이 작품으로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2007~2008년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과 함께 파미나 공주를 동시에 연기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또한 2011년 10월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호프만의 이야기'에서는 극 중 4명의 여자배역 줄리에타, 안토니아, 올랑피아, 스텔라를 모두 혼자서 맡아 세계 오페라계에 강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마침내 201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 그녀가 12세 때부터 꿈꿔 온 비올레타를 연기하게 된다. 출산 후 5달 만에 복귀한 그녀는 풍만한 곡선을 지닌 새빨간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서 멈출 줄 모르는 광란의 기교로 1막을 집어 삼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메트로폴리탄은 물론 라스칼라, 비엔나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오랑쥬 오페라축제 등 세계 유수의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오페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답게 종횡무진했다.
이번 내한은 담라우의 드높은 명성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나는 꿈속에 살고 싶어요', '라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인가',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 등 그녀의 대표 레퍼토리가 총망라된다. 첫 내한에 대한 설렘을 갖고 있는 그녀를 공연기획사 코리아아트컴퍼니를 통해 먼저 e-메일로 만났다.
Q. 드디어 첫 내한공연이다. 이렇게 내한이 늦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A. "스케줄이 아주 빠르게 채워지기도 하지만 사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있기 때이다. 짧은 콘서트를 하러 멀리 여행을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내 아들 둘이 여행을 다녀도 될 만큼 나이가 찼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신나는 아시아투어에 참여할 수 가 있게 됐다."(디아나 담라우에게는 7·5세 아들 2명이 있고, 모두 홈스쿨링을 한다.)
Q.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와 함께 '세계 소프라노 3대 디바'로 불린다.
A. "과찬의 말씀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확실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Q. 이번 내한에서도 아리아를 들려주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대표 캐릭터다. (화려한 음색과 기교가 특징인) 레제로 콜로라투라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비올레타 역을 소화하기 위해 소리가 깊고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던 것으로 안다. 노력의 과정과 비올레타를 성공적으로 소화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A. "비올레타 역은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좋아 보인다 또는 슬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역할이 전체 오페라 안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여정과 같다. 지혜롭게 노래하는 것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필요한 점이다. 그 다음이 리릭하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가 반드시 위와 같은 일련의 요구사항들을 다 소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점은 무대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것들, 그녀만의 드라마를 완전히 전달하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로서 분할 준비가 됐는지 여부다. 비올레타를 맡기 위해 좀 더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역할은 내게 정말 소중했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데다 사랑을 찾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25세 젊은 여인이 이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Q. 당신에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역시 특별한 작품이다. 당신과 '밤의 여왕'은 동격처럼 느껴진다.
A. "밤의 여왕은 가장 매혹적인 역할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노래와 가장 강렬하고 뛰어난 드라마와 극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두운 힘을 지닌 미스터리 한 그녀가 등장하기를 모두가 객석에서 숨죽여 기다린다. 악마적인 에너지와 파워를 가진 비할 데 없는 순간의 경험을 하기 위해 아주 빠르고 높은음 투성이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 난 영원히 밤의 여왕을 사랑할 거다."
Q. 성악가에게 목 관리는 험난하고 그 만큼 중요하다. 당신만의 목 관리 비결이 있나? 앞으로 또 다른 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도전하고 싶은 배역은?
A.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라는 악기는 교체할 수 없다. 내 목소리를 위한 레퍼토리를 맞출 때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다. 공연 전에는 반드시 성대를 충분히 쉬게 하고, 에너지를 아껴둔다. 하지만 투어를 다니고 끊임없이 세계의 부름에 따라 연주를 하는 사람에겐 관리가 쉽지 않다."
Q. 객석에서 당신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관객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A.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물론 청중이 웃을 때도 마찬가지다. 진지하게 사람들이 그 순간 나와 함께하고 있고,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말과 음악에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방과 같다. 내가 노래를 하고 있는 이유다!"
Q.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힘든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언제 가장 힘들었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A.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노래를 공부하던 시절에 위 수술을 했을 때다. 수술 때문에, 삽관을 했어야 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깨어나 보니 성대에 물혹이 생겼다. 건강을 되찾기 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7명의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았다. 정말 많은 치료를 받았지. 성대에 절대 칼을 대지 않으리라 마음에 수술적인 요법은 거절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성악가들이 절대로 성대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 수술을 거부하는 나를 보고 많은 분들께서 성악가로서의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 나아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Q. 남편인 베이스 바리톤 니콜라 테스테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부부가 함께 투어를 다니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A. "이번 투어는 우리에게 꿈과 같은 무대다! 나와 남편은 아시아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좀 더 큰 세상을 보고 완전히 흡수했으면 한다. 또한 함께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쁜 일이다. 베이스 바리톤과 소프라노는 무대에서 사랑의 듀엣신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거나, 축복하거나, 도와주거나, 아버지와 같이 보호해주는 그런 연기들을 하면서 무대를 즐기고 있다."
Q. 당신을 롤모델로 여기는 한국의 후배 성악가들을 위한 조언을 준다면.
A. "'노래하는 것을 즐기세요!' 이 말은 (캐나다 출신의 바리톤) 제럴드 핀리가 젊은 성악도들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들은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이 가장 좋은 조언인 것 같다. 정확한 딕션, 테크닉적인 어려움 해결 등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
Q. 이번 내한에 대해 한국 청중이 무엇을 기대하면 좋나?
A.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