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19 10:07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1963~2012)에 대한 한국 팬들의 직접적인 기억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2010년 2월6일 저녁이다. 데뷔 25년 만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열었다. 당시 운집한 팬들은 하지만 기쁨의 탄성보다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쉰에 가까운 나이에 10년 만에 벌였던 콘서트여서인지 체력이 달리는 듯했다. 당시 예정됐던 세계 투어의 초연 자리였다. 호흡은 가빴고 고음에서 목소리가 갈라졌으며 종종 노래를 이어 부르지도 못했다.
마약 중독, 전 남편 바비 브라운과의 이혼 등을 겪고 침체에 빠졌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러나 휴스턴은 땀범벅이 된 채 최선을 다했다. 팬들은 더욱 호응하며 힘을 실어줬다. 객석 곳곳에서 "사랑해"도 외쳤다. 2년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달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보디가드' 첫 라이선스 공연은 약 7년 만에 서울에서 휴스턴을 부활시켰다.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영화(1992)가 바탕이고 톱 가수를 다룬 이야기인 만큼 휴스턴이 떠오른다.
그녀의 삶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마찬가지로 디바로서 정체성과 고민을 파고드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지킴을 받아야 하는 자인 톱 가수 레이첼 마론과 지켜야 하는 자인 보디 가드 프랭크 파머 이야기에 주력한다. 이 지점에서 휴스턴에 대한 향수가 적극적으로 피어오른다. 애정을 보낸 상대를 잃은 상실감이다. 뮤지컬에서 프랭크는 레이첼을 지키는데 성공하지만 실제 휴스턴은 여기 없다.
휴스턴이 되살아나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 노래에 대한 지독한 향수다. 뮤지컬 '보디가드'는 영화 OST와 휴스턴의 히트 넘어를 적절히 섞어 그 향수를 잘 달래준다.
특히 마론 역의 여배우가 8할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사실상 원톱 뮤지컬이다. '보디가드'로 뮤지컬에 데뷔한 가수 양파(이은지)는 18일 무대에서 휴스턴의 영매(靈媒)이자 울림통이 됐다. '퀸 오브 더 나이트'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데이' 등 밝은 곡에서 춤과 함께 시원한 보컬을 뽐낸 모습도 놀라웠다.
하지만 역시 '런 투 유', '원 모멘트 인 타임'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 등 발라드를 부를 때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던 노년의 휴스턴 목소리가 젊은 날의 매끈했던 휴스턴의 목소리로 탈바꿈했다. 과거의 팝스타와 현재 한국 가수의 절묘한 화음이 들렸다고 하면 과장일까. 첫 뮤지컬임에도 연기 역시 나쁘지 않았다. 마론 역의 또 다른 캐스트인 정선아, 손승연 역시 양파 못지 않은 보컬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작품에서 단점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가수라고 해도 해당 감정을 극대화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수라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인상이 짙은 넘버들이 종종 있다. 마론을 노리는 스토커를 다룬 영상이 나올 때 부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휴스턴 명곡들이 귀에 감기는 콘서트형 주크박스로, 관객이 즐기는데 더할 나위 없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에서 넘버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확인시켜줬다. 다소 연극적인데 미닫이, 가림막 등의 구조를 사용한 리드미컬한 무대 변화와 화려한 조명이 이를 만회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남자 주인공인 프랭크의 넘버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프랭크가 가라오케 장면에서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부르는 장면은 보너스 트랙 같다. 이종혁과 박성웅을 프랭크 역을 나눠 맡는데, 큰 키의 그들은 보디가드 이미지와 어울린다.
'킹키부츠'에 이은 CJ E&M의 글로벌 공동프로듀싱 2호 작품이다. 2012년 5월 웨스트엔드 초연 프러덕션에 투자사로 참여하며 일찌감치 한국 공연권을 확보했다. 이번이 아시아 초연이다. 2017년 3월5일까지.
◇특히 주목해야 할 넘버와 장면 3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보디가드' OST는 아니다. 올해 6월 타계한 무하마드 알리 본인이 주연을 맡았던 복싱 영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1977)의 주제곡이었다. 조지 벤슨이 원곡을 불렀다. 휴스턴이 리메이크하면서 1986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뮤지컬 '보디가드'에서는 마론이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넘버인데, 아름다운 멜로디는 여전했다. 휴스턴의 첫 내한공연 당시 특히 힘겨워했던 곡이라 아련함이 더해졌다.
▲'원 모멘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곡이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하계 장애인 올림픽 사운드 트랙이다. 올해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선정한 역대 올림픽 주제곡 3위에 올랐다. 노랫말은 '고통과 한계를 극복하자'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휴스턴에게 더 가닿는다. 그녀는 내한공연 때 이 곡을 부르지 않았디다. 코러스의 노래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화 '보디가드' 출연 당시 젊은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와 애틋해졌다. 뮤지컬 막바지에서는 프랭크가 마론을 지키려다 스토커의 총을 맞는다. 마론은 "내버려둬요. 그는 내 보디가드에요"라고 절박하게 외친다.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보디가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곡이다.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해 휴스턴에게 숱한 상을 안기며 세기의 디바로 등극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양파 역시 16세 오디션 당시 이 곡을 부른 이후 '제2의 휘트니 휴스턴'이 되고 싶다고 했다. 휴스턴의 내한공연 앙코르 직전 본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들려준 곡도 이 곡이었다. 당시 특유의 흘리는 첫 음이 나오자 팬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휴스턴은 노래의 절정인 후렴구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의 고음을 처리하지 못했고 심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대신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력하는 그녀를 위해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뮤지컬에서 역시 마론이 이 곡을 부른 뒤 환호성이 쏟아졌다.
쉰에 가까운 나이에 10년 만에 벌였던 콘서트여서인지 체력이 달리는 듯했다. 당시 예정됐던 세계 투어의 초연 자리였다. 호흡은 가빴고 고음에서 목소리가 갈라졌으며 종종 노래를 이어 부르지도 못했다.
마약 중독, 전 남편 바비 브라운과의 이혼 등을 겪고 침체에 빠졌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러나 휴스턴은 땀범벅이 된 채 최선을 다했다. 팬들은 더욱 호응하며 힘을 실어줬다. 객석 곳곳에서 "사랑해"도 외쳤다. 2년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달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보디가드' 첫 라이선스 공연은 약 7년 만에 서울에서 휴스턴을 부활시켰다.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영화(1992)가 바탕이고 톱 가수를 다룬 이야기인 만큼 휴스턴이 떠오른다.
그녀의 삶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마찬가지로 디바로서 정체성과 고민을 파고드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지킴을 받아야 하는 자인 톱 가수 레이첼 마론과 지켜야 하는 자인 보디 가드 프랭크 파머 이야기에 주력한다. 이 지점에서 휴스턴에 대한 향수가 적극적으로 피어오른다. 애정을 보낸 상대를 잃은 상실감이다. 뮤지컬에서 프랭크는 레이첼을 지키는데 성공하지만 실제 휴스턴은 여기 없다.
휴스턴이 되살아나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 노래에 대한 지독한 향수다. 뮤지컬 '보디가드'는 영화 OST와 휴스턴의 히트 넘어를 적절히 섞어 그 향수를 잘 달래준다.
특히 마론 역의 여배우가 8할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사실상 원톱 뮤지컬이다. '보디가드'로 뮤지컬에 데뷔한 가수 양파(이은지)는 18일 무대에서 휴스턴의 영매(靈媒)이자 울림통이 됐다. '퀸 오브 더 나이트'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데이' 등 밝은 곡에서 춤과 함께 시원한 보컬을 뽐낸 모습도 놀라웠다.
하지만 역시 '런 투 유', '원 모멘트 인 타임'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 등 발라드를 부를 때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던 노년의 휴스턴 목소리가 젊은 날의 매끈했던 휴스턴의 목소리로 탈바꿈했다. 과거의 팝스타와 현재 한국 가수의 절묘한 화음이 들렸다고 하면 과장일까. 첫 뮤지컬임에도 연기 역시 나쁘지 않았다. 마론 역의 또 다른 캐스트인 정선아, 손승연 역시 양파 못지 않은 보컬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작품에서 단점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가수라고 해도 해당 감정을 극대화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수라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인상이 짙은 넘버들이 종종 있다. 마론을 노리는 스토커를 다룬 영상이 나올 때 부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휴스턴 명곡들이 귀에 감기는 콘서트형 주크박스로, 관객이 즐기는데 더할 나위 없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에서 넘버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확인시켜줬다. 다소 연극적인데 미닫이, 가림막 등의 구조를 사용한 리드미컬한 무대 변화와 화려한 조명이 이를 만회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남자 주인공인 프랭크의 넘버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프랭크가 가라오케 장면에서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부르는 장면은 보너스 트랙 같다. 이종혁과 박성웅을 프랭크 역을 나눠 맡는데, 큰 키의 그들은 보디가드 이미지와 어울린다.
'킹키부츠'에 이은 CJ E&M의 글로벌 공동프로듀싱 2호 작품이다. 2012년 5월 웨스트엔드 초연 프러덕션에 투자사로 참여하며 일찌감치 한국 공연권을 확보했다. 이번이 아시아 초연이다. 2017년 3월5일까지.
◇특히 주목해야 할 넘버와 장면 3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보디가드' OST는 아니다. 올해 6월 타계한 무하마드 알리 본인이 주연을 맡았던 복싱 영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1977)의 주제곡이었다. 조지 벤슨이 원곡을 불렀다. 휴스턴이 리메이크하면서 1986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뮤지컬 '보디가드'에서는 마론이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넘버인데, 아름다운 멜로디는 여전했다. 휴스턴의 첫 내한공연 당시 특히 힘겨워했던 곡이라 아련함이 더해졌다.
▲'원 모멘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곡이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하계 장애인 올림픽 사운드 트랙이다. 올해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가 선정한 역대 올림픽 주제곡 3위에 올랐다. 노랫말은 '고통과 한계를 극복하자'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휴스턴에게 더 가닿는다. 그녀는 내한공연 때 이 곡을 부르지 않았디다. 코러스의 노래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화 '보디가드' 출연 당시 젊은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와 애틋해졌다. 뮤지컬 막바지에서는 프랭크가 마론을 지키려다 스토커의 총을 맞는다. 마론은 "내버려둬요. 그는 내 보디가드에요"라고 절박하게 외친다.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보디가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곡이다.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해 휴스턴에게 숱한 상을 안기며 세기의 디바로 등극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양파 역시 16세 오디션 당시 이 곡을 부른 이후 '제2의 휘트니 휴스턴'이 되고 싶다고 했다. 휴스턴의 내한공연 앙코르 직전 본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들려준 곡도 이 곡이었다. 당시 특유의 흘리는 첫 음이 나오자 팬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휴스턴은 노래의 절정인 후렴구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의 고음을 처리하지 못했고 심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대신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력하는 그녀를 위해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뮤지컬에서 역시 마론이 이 곡을 부른 뒤 환호성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