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박정민 vs 문근영 "행복한 좌절 교감중"

입력 : 2016.12.19 10:05
박정민(29)·문근영(29)은 서른살을 목전에 둔 동갑내기 배우다. 10대의 불 같은 사랑을 그린 셰익스피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연출 양정웅) 주인공을 맡아 또래 배우로서 연기 열정을 치열하게 나누고 있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박정민과 문근영은 연극 장르에 대해 한없이 조심스러워했다. 각자 영화 '동주'와 드라마 '안투라지', 영화 '사도'와 드라마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하지만 40여회차를 원캐스트로 나서는 두 사람은 "연극은 그럼에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연극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박정민은 극단 차이무에서 선배들 일을 도왔고,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같은 연극에 나왔다. 문근영은 6년 전 '클로저'로 연극에 데뷔할 당시 영화에서 내털리 포트만이 맡았던 역을 연기해 화제가 됐다.

"첫 공연 때 벽 뒤에서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랐어요. 계속 '열리지 마라, 열리지 마라'라고 주문을 외웠죠. 처음에는 정말 많이 힘들고 좌절했어요. 그날 그날 덜 좌절한 사람이 위로해줘요. 하하."(박정민)

문근영은 "'클로저' 때는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은 무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안다"고 했다.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온전히 드러나니 말이죠. 이번에 연습 중에 저를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몰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저를 벼랑 끝에 몰아넣은 걸 선택하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웃기잖아요."(문근영)

'연극계 대모' 윤석화는 이들의 연극을 본 뒤 잘했다면서도 무대 언어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끔 숙제를 내줬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제 연기가 잘 보여줄 수 있게끔 잡아주지만 무대에서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정민이랑 계속 좌절하고 멘털을 재정비하고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정민이랑 함께 고민하는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미칠 정도예요."(문근영)

두 사람 모두 모두 처음에는 목숨까지 버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극적인 사랑까지는 안 해봐서 그런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점차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공연 때는 죽을 때도 오열했는데, 지금은 기쁜 마음도 배어 있어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옆으로 간다'는 환희죠."(박정민)

"영화를 통해서 비극적인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어요. 원래 대본을 잃어보니 희극적인 요소들도 많더라고요. 비련의 여주인공만 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놀랐어요. 연출님이 원전을 최대한 빼지 않고 가고 싶다고 하셔서 그런 부분이 어울러지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어요."(문근영)

박정민은 연습과 공연이 반복되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설레는 10대 사랑이 점차 자신들의 나이인 서른살의 노련한 사랑으로 탈바꿈되는 것 같다고 했다.

"계속 근영이랑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롭게 연기하자며 노력하죠. 근영이에게 고마운 것이 초반 파티 장면에서 작지만 너무 예쁜 눈웃음을 지어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매번 새롭게 발코니 신으로 가요."(박정민)

문근영은 항상 줄리엣의 마음에서 시작한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나이 때 첫 사랑을 빠진 소녀는 한편으로는 본인이 '비극적인 사랑'을 겪을 위기에 처했다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쯤은 반대해주는 '비련의 여주인공' 같다고 할까요. 줄리엣에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 힘듦을 불안해하면서도 즐기고 있는…."

캐릭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근데 오히려 다르게 접근하는 부분이 서로에게 도움이 됐다. 친한 동갑내기이자 서로를 존중하는 배우라서 가능한 것이었다.

"제가 연습 중에 연기가 안 돼서 화가 나 있는 상태였어요. 그 때 근영이가 다가 오더니 '우리 정민이 대본 한번 봐볼까'라고 하더라고요. 제 대본에는 빼곡히 메모로 차 있는데, 근영이가 마음으로 로미오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것이 기본인데 저는 행간들의 구멍에 치여 있었던 거죠. 고마운 마음을 적어서 근영이게에 손편지를 보냈어요. 역시 17년차 선배님은 다르더라고요."(박정민)

문근영은 반대로 박정민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지점을 연기를 해서 질투가 나기도 해요. 호호호. 제가 줄리엣을 연기하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원동력이죠. 편지를 주고 받은 것들이 쌓여서 좋은 호흡을 만들어내고 있아요. 대본을 봤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질문, 액팅 등이 너무 세세해서 이러니 연기가 깔끔하고 명확하고 정확하다고 느꼈죠. 저는 감정으로만 뭉뚱그려서 그렇게 콕콕 집어주는 것이 좋았어요."(문근영)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티켓이 매진에 육박해 구하기 어렵다. 이들의 성장 서사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행운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치열하게 올해를 보냈고, 그런 기운이 이 작품에 묻어 있다.

"20대초부터 지난해까지는 매년 초 계획을 세웠는데, 올해부터는 목표를 두지 않았어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올해 바쁘게 잘 산 것 같아요. 내년에도 순간 순간 잘해나갔으면 해요."(박정민)

"올해 변화된 삶을 살았어요. 그동안에는 제 방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 우물 밖으로 나가고 싶다, 성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이번 연극도 기특한 선택이에요."(문근영)

그렇기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고민, 좌절 자체가 행복하다고 문근영과 박정민은 동감했다. "좌절을 즐기고 있어요. 치열한 실패라고 할 수도 있는 이 과정 자체가 저희에게는 필요하죠. 연기 때마다 이 정도 고민은 당연한 것인데 그 동안 회피했거든요. 무대에서는 그것이 용납이 안 되죠. 총알을 오롯하게 맞고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어요."(박정민) "좌절감, 공포감이 저희를 미치도록 즐겁게 해요."(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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