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게 말 거는 집시의 삶… 그 고단함을 담다

입력 : 2016.12.19 03:03

한미사진미술관 쿠델카 사진전… 집시 사진 111점 총망라

쪼그려 앉은 집시가 고개 숙인 말에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 건다. 등에 천을 깐 채 축 늘어진 말(馬)이나 그 말에게 말(言) 거는 사내나 세상 무게에 짓눌린 건 마찬가지. 삶의 고단한 흔적이 흑백 사진 가득 묻어 있다.

유랑 생활을 하는 집시의 삶을 반세기 넘게 렌즈에 담아온 사진가 요세프 쿠델카(78)의 사진전 '집시'전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지난 17일 개막했다. 체코 출신인 쿠델카는 '사진의 기록성에 대해 작가적 해석을 시도한 거장'(사진심리학자 신수진)으로 불린다. 1975년 미국 아퍼처에서 발간한 첫 사진집 '집시'는 국내 사진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명저로 꼽힌다.

고개 숙인 말과 대화하는 집시.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967년 슬로바키아에서 찍은 사진.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고개 숙인 말과 대화하는 집시.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967년 슬로바키아에서 찍은 사진.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무국적자로 살았다. 집시처럼 떠돌이 삶을 자처한 계기가 있었다. 프라하 공대를 졸업하고 항공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그에게 1968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련의 프라하 침공, '프라하의 봄'이었다. 당시 쿠델카는 혁명광장으로 알려진 바츨라프 광장을 손목시계와 함께 찍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에 프라하의 비극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듬해 쿠델카는 신변상의 위험 때문에 '익명의 프라하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을 받았다. 1971년 영국으로 망명해 무국적자가 됐고, 그해 매그넘 포토스에 합류했다.

이번 전시엔 그의 집시 사진 111점이 모두 전시됐다. 개막 참석차 방한한 그는 "집시 시리즈를 보여주는 마지막 전시가 될 것 같다"며 "집시는 인간의 삶과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 매우 강렬한 피사체였다"고 했다. 그가 직접 작품을 배치했다. 첫 작품은 1966년 체코 모라비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집시를 담은 사진. 집시 음악에 이끌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내년 4월 15일까지. (02)41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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