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 사고후 30년,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입력 : 2016.10.17 10:03
정성태 사진전 '쇠잔한 아름다움'展
17일부터 나무 앤 모던아트갤러리

1986년 4월 이후 그곳은 못 살 곳, 못 갈 곳이 되었다.

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 만 명의 고통과 슬픔이 스며든 처참했던 곳.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난 ‘프리피야트’ 다.

사고 발생 후,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방사능 수치를 회복하려면 900여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던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정성태가 담아온 그곳의 풍경은 자연과 생명의 에너지로 강렬하다.

잔인했던 아픔을 양분으로 삼아 야생동물들과 수 천 가지의 식물들과 폐허가 된 고향을 버릴 수 없었던 원주민들의 눈빛은 생명의 고귀함을 전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그곳의 풍경을 처음으로 한국에서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헌법재판소옆 갤러리인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는 장성태의 사진전 'CHERNOBYL-쇠잔한 아름다움'전을 17일부터 연다. 우크라이나 문화원과 공동 기획이다.

멀고 낯선 지역, 그리고 아직도 접근이 우려되는 지역을 6 번씩 방문 하면서 촬영한 장성태의 사진은 체르노빌 지역의 고단한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내가 체르노빌에 가서 찍은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모셜르(Samosely) 즉 체르노빌의 원주민분들"이라며 "이 분들은 강제 이주되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방사능의 위험에도 고향집으로 돌아온 이 분들에 감동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로찍은 대상이 사모셜르라는 사람이었다면, 두 번째로 찍은 대상은 프리피야트라는 공간이다.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만만치 않는 방사능 수치는 마치 우리에게 결코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방사능이라는 경고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프리피야트(Pripyat)에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의자들, 아무렇게나 열려있는 창문들, 군데군데 벗겨져 마치 생선의 비늘을 연상케하는 빛 바랜 벽지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위로 두텁게 쌓인 먼지들. 이런 풍경 사이로 유령처럼 방사능이 떠다닌다.

작가의 스승인 구본창 사진작가는 "방사능에 오염된 체르노빌과 강제 이주되었던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며 알렉시에비치의 글처럼 그들의 운명, 어쩌면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며 "소외된 것들에 대한 그의 관심사가 인류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테마로 발전하게 되어 앞으로의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국 우크라이나 문화원은 이번 전시수익금을 마더스하트( Mothers Heart, 한국 우크라이나 문화원과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Mr.티모센코가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유전병에 걸리거나 전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어린이를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전시는 11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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