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김준수 가창력 좋지만 너무 길고 우울한 3시간

입력 : 2016.09.08 03:00

도리안 그레이

오스카 와일드의 고전(古典) 영문학을 뮤지컬 원작으로 삼은 시도는 대담했고, 후기 낭만주의의 분위기를 담아낸 듯한 클래식풍의 음악은 정제돼 있었다. 주연배우의 가창력은 물론 무대와 조명·영상까지 수준급의 솜씨를 보였다. 뮤지컬계 유수 인력이 모여 만든 신작 대형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사진·조용신 극본, 김문정 작곡, 이지나 연출)는 외관상으로는 분명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라는 명성에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씨제스컬쳐
/씨제스컬쳐
1884년 런던,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 미청년 도리안은 자신의 초상화에 반해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탐닉하고, 쾌락과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 공연 시작 25분이 지나 첫 노래를 부르는 도리안 역 김준수는 음침한 분위기 속 특유의 탁음(濁音) 섞인 가창력으로 순수와 나락의 두 얼굴을 지닌 비현실적 인물을 잘 표현하며 콘서트장처럼 극을 주도했다. 그를 탐미의 길로 유혹하는 헨리 역 박은태는 능란해진 연기와 미성으로 극에 윤기를 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야"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만이 인간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는 법" 같은 현학적인 대사는 가무(歌舞) 중심의 뮤지컬과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극 중 인물들이 도대체 왜 아름다움을 최고 가치로 삼는 유미주의(唯美主義)에 빠지는 것인지, 젊은 도리안이 왜 먼 훗날의 노쇠를 두려워하다가 연인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인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종종 각 장면은 인과관계 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연 시간 3시간 내내 계속되는 음습한 분위기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별 반전 없이 지속된다. 김준수의 연기력은 많이 좋아졌으나, 노래 아닌 대사를 할 때는 종종 불안정했다. 김준수의 팬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듯한 이 우울한 뮤지컬을 주변에 선뜻 권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10월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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