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발레 오스카 상' 김기민 "실패 두려워하지 않는게 중요"

입력 : 2016.05.19 09:35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김기민(24)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2016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의 최고 남성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 발레리노로는 처음이다.

김기민은 18일 뉴시스와 전화통화에서 담담했다. "정말 영광스런 상이라 감사하다. 하지만 앞으로 관객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차분히 말했다. "기대하지 않았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춤의 영예'라는 뜻의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발레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1991년 제정했다. 세계 단체들이 공연한 작품이 심사대상이다.

김기민은 파리 오페라발레단, 마린스키발레단, 뉴욕 시티발레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약 중인 무용수들과 경합했다. 그동안 발레리노 김현웅, 이동훈 등 한국 남성 무용수들이 후보에 올랐으나 이 상을 받지 못했다.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이자 김기민의 형인 김기완(27)은 "기민이가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믿기지 않고 신기하다"며 "더욱이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은 상이기 때문에 더더욱 축하해주고 싶고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무용수 중에서는 발레리나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1999)과 김주원 성신여대 교수(2006)가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김기민이 한국 발레리나에 이어 발레리노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인 첫 수상자인 강수진 단장은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발레계의 오스카로 최고의 영예의 상"이라며 "김기민이 한국 발레리노의 세계 진출의 길을 열고 있다"고 기뻐했다.

김기민은 "다른 후보보다 내가 뛰어나서 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라 바야데르'를 워낙 좋아해서 연구하고 신경 쓰고 공부한 것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기민은 지난해 말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공연한 '라 바야데르'로 이 상을 받았다.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김기민은 솔로르를 맡아 안정된 기술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과 심리 묘사로 호평 받았다. 평소 마린스키발레단에서도 섬세한 표현력과 진중함에 대해 높게 평가받아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김기민은 '발레 신동'으로 불렸다. 만 16세이던 2009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를 맡아 국내 프로 발레단 사상 최연소로 주역 데뷔했다.
2011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했다. 2012년에 솔리스트로 승급해 '해적'과 '돈키호테'에서 주역을 맡아 호평 받았다. 입단 4년 만인 지난해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아시아인이 수석무용수가 된 건 그가 처음이다.

이번에 상을 받은 것보다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승급됐을 때가 더 부담스러웠다는 김기민은 "상에 부합하는 창피하지 않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바랐다. 하반기에도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그는 "당장 다음 공연부터 집중해야 한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김기민의 화려한 경력에 그가 매번 성공가도만 달린 것으로 일부에서는 오해한다. 하지만 그가 상당한 시련을 겪은 건 주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김기민은 지독한 노력으로 이겨냈다. 김기민은 "실패를 할 때마다 계속 도전했다. 상황을 좋게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강수진 단장을 시작으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서희,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솔리스트 박세은 등 발레리나의 국제 무대 활약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하지만 발레리노는 발레리나의 비해 활동 무용수가 많지 않다. 김기민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최영규 정도다.

남자 무용수 최고 정상에 선 김기민은 "많은 경험을 통해 몸이 스스로 느끼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고 도전하는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