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성, 이런 '헤드윅'도 있다…슬픈 박수의 역설

입력 : 2016.03.28 09:45
라이선스 록 뮤지컬 '헤드윅'의 새 타이틀롤로 나선 정문성(35)은 담담하다. 남자 뮤지컬배우라면 누구나 욕심낼 법한 캐릭터에 들뜰 만도 하건만 "내 안에 비워있는 부분을 더 꾹꾹 채워야한다"며 싱긋 웃을 뿐이다.

정문성은 뉴욕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브로드웨이 공연에 맞춰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옮겨 오면서 '뉴 메이크업'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시즌에 가장 알맞는 캐스팅이다.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답게 연극 무대에서 탁월한 드라마 연기를 보여준 그의 헤드윅은 새롭다.

하지만 이달 4일 첫 공연은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로서 내게 실망스런 공연이었다. 일단 너무 떨렸다. 다음에 설명해야 할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날 객석에 (또 다른 헤드윅들인) 승우 형과 정석이가 앉아 있었는데 관객인 척 하면서 힌트를 주더라. 속상하고 화가 난 날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신을 똑바로 차린 정문성은 다음 회차부터 바로 정상 궤도로 진입했다. "두번째 무대에서는 대본을 깔끔하게 읽고 세 번째 무대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드라마와 음악성을 보여주고 네 번째에서 새로운 이츠학을 만나면서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

대학로에서 입지를 굳힌 정문성임에도 그가 첫 공연에서 떤 것에서 보듯 헤드윅은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는 '독이 든 성배'로 통한다.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거의 혼자서 2시간을 홀로 이끌어가며 내면 연기, 가창, 애드리브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처음에는 기대감이 부담감보다 더 컸다. 흥분도 되고.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오더라. 대사의 어마어마한 분량과 함께 캐릭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더라다. 헤드윅이라는 사람을 내 안에 채우고 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본 공연 직전에 드레스 리허설을 하다가 오른쪽 팔 인대 근육 쪽이 찢어져 깁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문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일부 관객은 자연스러게 정문성이 설정한 콘셉트로 이해하기도 했다. 극 중에서 헤드윅이 자신의 반쪽으로 여겼던 토미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부상도 드라마 안으로 끌어 들이는 정문성의 내공 덕분이다. "아직 의사에게 허락 받은 건 아닌데 깁스를 풀려고 한다. 계속 콘셉트처럼 밀고 나가도 상관 없지만 팔을 들거나 컨테이너 박스 위로 기어올라갈 때 좀 불편하다. 하하."

이와 함께 그의 여장이 너무 예쁘고 몸매도 늘씬해서 깜짝 놀라는 관객이 많다. 정문성의 본래 외모는 호남형이다. "메이크업을 하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분장을 하고 나서는 마인드가 자연스레 바뀐다. 여자가 된 기분이다. 예쁘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영화배우 겸 감독 존 캐머런 미철이 극본과 가사를 쓰고 기타리스트 스티븐 트래스크가 곡을 붙인 뮤지컬이다. 동독 출신 실패한 트랜스젠더 록 가수 '한셀'이 주인공이다. 결혼을 위해 이름을 '헤드윅'으로 바꾼 그는 성전환수술을 받고 첫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가지만 이내 버려진다. 이후 진짜 자신의 반쪽으로 여기게 되는 토미를 만나지만 그와의 사랑도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정문성은 "헤드윅이 왜 저렇게 살아가야 했는지 관객이 느꼈으면 했다"며 눈을 빛냈다. "헤드윅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멋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헤드윅은 살아가는데 완벽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 '완벽한 이유'는 주요 넘버 중 하나인 '디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에 녹아 있다고 했다. 신화, 성(性), 사랑 등을 섞어 사랑의 기원, 그리고 본질에 대해 노래하는 명곡이다.

"헤드윅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사랑에 대해 명확하게 정한다. '사랑의 기원'을 정확히 인지하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랑의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쪽을 찾기를 원하고. 누군가에게 그의 모습은 실패한 남자일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사랑의 이유이고 사랑의 기원을 찾으며 자신의 반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헤드윅이 마지막에 무대를 떠날 때 슬픈 모습이 있더라도 "불쌍한 것이 멋있어서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정문성표 '헤드윅'의 키워드는 행복으로 보인다. "몸을 팔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자존감이 있는 캐릭터다. 자기 중심으로 살며 자신이 한 일에 창피해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여린 인물이기도 하다. 불법 체류로 미국에 머무는 자신의 남편 '이츠학'과 밴드 '앵그리인치' 멤버들에게 못 되게 구는 이유가 그들이 자신을 떠날까 두렵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가했다. "이들이 떠날까 굉장히 무서워한다. 인간 관계에서는 약한 사람인데 못 되게 굴면서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이츠학이 말 없이 자신을 얼마나 돌보는지 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할퀴어가면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는 이츠학과 밴드 멤버들에게 정말 고마워한다."

1998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헤드윅'은 2000년 동명 영화로 옮겨졌다. 미철은 '헤드윅'의 오리지널 캐스트이자 극작가, 영화의 감독 겸 주연배우을 맡았는데 정문성은 2008년 이 영화를 보고 미철 연기와 극의 내용에 반해 출연을 꿈꿨다. 2007년 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직후였다. 그렇게 정문성의 '헤드윅'에 대한 꿈은 작품 출연 목록이 쌓여가는 동시에 무르익어갔다.

이번 시즌을 비롯해 이미 여러 차례 헤드윅을 연기한 조승우(36), 조정석(36), YB 윤도현(44)과 굳이 차별화를 시키지 않아도 다른 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9년 정도 연기를 했으니까 새 캐릭터를 연기해도 내가 묻어날 것으로 봤다. 그래서 다르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헤드윅 자체를 먼저 소화하려고 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 정문성은 본래 가수를 꿈 꿨다. 그러나 몸 담았던 소속사에서 당시 유행한 댄스 가수를 권하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박차고 나왔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록 음악을 즐겨듣지 않았다. 가사를 중시한 그는 주로 한국 노래를 즐겨 듣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경험치가 '헤드윅'에 도움이 되고 있다. "'헤드윅'의 넘버들이 멜로디도 엄청 좋지만 그 노랫말에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연기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 그런 가사를 조금이라도 흘려서 부르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대학로는 정문성 판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김애란 원작 소설이 바탕인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여든 살의 외모를 가진 17세 소년 '아름이', 연극 '스피킹 인 텅스'에서 사랑에 혼란을 느끼는 인물들인 피트 & 닐 & 존(1인3역),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김우진,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냉소적인 정치범 '발렌틴'을 연기하며 호평 받았다. 최근 종방한 SBS TV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사대부의 일원 '한구영'을 맡아 좀 더 많은 대중에게 눈도장을 받기도 했다.

데뷔 10주년을 앞둔 정문성은 "사실 연기를 하면서 계획은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런 역할을 맡고, 다음에는 저런 역할을 맡아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본이 좋고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해보고 싶은 역을 골라왔다"며 눈을 빛냈다. "물론 모든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좌절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토록 바라던 '헤드윅'을 뒤늦게 만났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여긴다. "더 일찍 만났으면 좀 더 잘해보려는 마음에 더 실수를 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은 지금 그래서 더 '쿨한' 헤드윅답다. "'헤드윅'으로 정점을 찍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도 없다. 헤드윅을 통해서 이 만큼이라도 발전하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5월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헤드윅 윤도현·조승우·조정석·정문성·변요한, 이츠학 서문탁·임진아·제이민. 앵그리인치 밴드 멤버로 음악감독 이준·신석철·서영도. 프로듀서 김영욱·임양혁·송한샘, 연출 손지은, 조명디자인 이우형, 무대디자인 김태영. 5만5000~9만9000원. 쇼노트·창작컴퍼니다. 02-749-9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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