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시향 떠난 정명훈의 마지막 연주]
85명 단원과 일일이 악수 나눠… 몇몇은 얼굴 감싸고 울먹이기도
청중들 묵묵히 기립박수 보내
마에스트로의 마지막 한마디 "해피 뉴 이어! 감사합니다"

30일 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의 올해 마지막 공연이자 10년간 예술감독을 지내며 교향악단을 아시아 정상급으로 키운 지휘자 정명훈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를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그는 전날인 29일 손수 써내려간 편지를 통해 예술감독직을 내려놓고 이날 연주회를 끝으로 당분간 시향을 지휘하지 않겠다고 밝혔기에, 공연장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 로비에서는 신아라 부악장, 안동혁 더블베이스 수석은 물론 알렉상드르 바티(트럼펫 수석)와 홍웨이 황(비올라 수석) 등 외국인 연주자들까지 나서 단원 일동 명의로 된 호소문을 돌렸다. 정 감독 사퇴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서울시향에 대한 성원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 예정대로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 공연이 시작되고, 그가 입장하자 1~3층 2300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평소보다 더 큰 환호와 함성으로 그를 맞았다. 지휘대에 오른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힘차게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검은색 연주복으로 통일한 단원들은 가슴과 어깨, 소매 등에 '자유'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손바닥을 그려넣은 스티커를 붙이고 나왔다. 단원들은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10년간 동고동락한 예술감독과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매년 12월 말 무대에 올리는 베토벤 '합창'은 올봄에 일찌감치 티켓이 매진됐을 만큼 인기 있는 연말 음악 이벤트다.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아홉 편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획기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마지막 악장에 '환희의 송가'를 도입해 영원한 이상향을 향한 인류의 염원과 호소를 치열하고 명료하게 부각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합창'은 그동안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합창'이란 호평을 받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말없이 대기실로 들어간 정명훈은 20여 분간 단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위로를 주고받았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침통한 분위기였지만 단원들을 안아주는 감독님을 보며 '서울시향의 아름다운 10년'을 떠올렸다"고 했다. 뒤이어 나타난 지휘자는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입구를 잔뜩 메운 취재진과 시민들을 향해 "해피 뉴 이어!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