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21 00:03
獨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 별세
'우리 시대의 마에스트로' 쿠르트 마주어(88)가 19일(현지 시각) 미국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1927년 독일령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주어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 작곡을 전공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무려 26년간 지휘했고, 이후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프랑스 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 등을 지내면서 동과 서의 지휘대를 평정한 '음악계 대부'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동독, 특히 민주화 시위의 발원지인 라이프치히 사람들에게 그는 대통령보다 더 고귀한 존재였다. 동독이 해방되기 직전인 1989년 10월, 멘델스존이 지휘했던 유서 깊은 콘서트홀인 게반트하우스 앞 광장은 연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언제 유혈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마주어는 경찰과 대치 중인 시민들에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비폭력·평화 시위를 당부했다. 게반트하우스의 문을 활짝 열어 시위 군중을 피신시키기도 했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 옛 동독 반체제 지식인 그룹이 마주어를 동독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그는 "나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이 있다"며 거절했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기념식에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 1991년 그가 뉴욕 필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라이프치히의 온 거리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주빈 메타가 물러난 이후 '100명이 떠드는 소리 같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던 뉴욕 필은 마주어의 지휘 아래 세계 정상급 악단들과 겨룰 만한 사운드를 되찾았다.
마주어는 지휘봉을 쓰지 않는 '맨손 지휘'로도 유명했다. 평소 "만약 내가 지휘를 그만두게 된다면 음악팬들은 내 부음을 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1년 10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사라 장)을 지휘했는데 첫날 연주 직후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듬해 7월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기 위해 뉴욕 필하모닉과 서울을 다시 찾아 "나를 보살펴준 한국의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며 따뜻하게 웃었다. 마주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솔리스트 중 한 명인 사라 장의 나라"라며 서울 연주를 즐긴다고 말하곤 했다.
1927년 독일령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주어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 작곡을 전공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무려 26년간 지휘했고, 이후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프랑스 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 등을 지내면서 동과 서의 지휘대를 평정한 '음악계 대부'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동독, 특히 민주화 시위의 발원지인 라이프치히 사람들에게 그는 대통령보다 더 고귀한 존재였다. 동독이 해방되기 직전인 1989년 10월, 멘델스존이 지휘했던 유서 깊은 콘서트홀인 게반트하우스 앞 광장은 연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언제 유혈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마주어는 경찰과 대치 중인 시민들에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비폭력·평화 시위를 당부했다. 게반트하우스의 문을 활짝 열어 시위 군중을 피신시키기도 했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 옛 동독 반체제 지식인 그룹이 마주어를 동독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그는 "나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이 있다"며 거절했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기념식에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 1991년 그가 뉴욕 필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라이프치히의 온 거리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주빈 메타가 물러난 이후 '100명이 떠드는 소리 같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던 뉴욕 필은 마주어의 지휘 아래 세계 정상급 악단들과 겨룰 만한 사운드를 되찾았다.
마주어는 지휘봉을 쓰지 않는 '맨손 지휘'로도 유명했다. 평소 "만약 내가 지휘를 그만두게 된다면 음악팬들은 내 부음을 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1년 10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사라 장)을 지휘했는데 첫날 연주 직후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듬해 7월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기 위해 뉴욕 필하모닉과 서울을 다시 찾아 "나를 보살펴준 한국의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며 따뜻하게 웃었다. 마주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솔리스트 중 한 명인 사라 장의 나라"라며 서울 연주를 즐긴다고 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