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강수진, 발레의 전설이 되다…그녀도 이들처럼

입력 : 2015.11.05 18:44
지난 6월21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진 발레 '로미와 줄리엣' 커튼콜. 수많은 붉은 장미가 무대를 뒤덮었다.

미국 발레계의 간판인 발레리나 줄리 켄트(46)가 세계3대 발레단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자리에서 내려오는 날이었다. 켄트가 29년 현역 발레리나 인생을 마감하는 그날 공연장은 관객들의 눈물로 가득 찼다.

켄트는 한국인 첫 ABT 수석 무용수(프린서펄 댄서)인 발레리나 서희(29)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리나이기도 한, 세계 발레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2012년 '지젤' 내한공연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한국 팬들에게 눈도장을 받기도 했다.

역시 세계 3대 발레단 중의 하나인 영국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다시 버셀(46)이 2007년 출연한 맥밀런의 작품 '지구의 노래' 커튼콜 역시 기억할 만한 은퇴공연이다. 커튼콜이 수없이 이어졌고 무대 역시 각종 꽃으로 뒤덮였다. 현지 어느 언론은 당일 런던의 꽃이 모두 팔려나갔다고 쓰기도 했다.

프랑스 출신 발레리나로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활약한 실비 기옘(50)은 지난 7월 영국 런던에서 은퇴 공연을 선보였다. 아크람 칸, 윌리엄 포사이드, 마크 에츠 등 혁신적인 안무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이날 그녀는 과거의 화려함 대신 자연스러움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52) 단장이 하늘을 날았다. 이 단체의 20주년 기념 공연 '비잉'에서 와이어를 타고 공중을 날며 자신의 현역 무대를 마감했다.

정상급 발레리나들은 자기 관리만 철저하면 쉰살 안팎까지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에 있을 때 최고의 모습을 팬들에게 기억시키고픈 바람도 크다.

한국 발레계의 대명사로 통하는 강수진(48) 국립발레단 단장 역시 아직 절정의 기량에 있음에도 마지막 무대를 예고했다.

2016년 남편 툰치 소크멘(52)의 생일인 7월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전막 발레 '오네긴'의 타티아나'를 끝으로 실질적인 은퇴를 하게 된다. 내년은 강수진이 1986년 19세 나이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다.

앞서 6~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오네긴'을 한국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인 뒤 고국에서 현역 발레리나로서 먼저 은퇴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공연마다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다. 후회보다는 좋은 때 물러나서 좋다.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을 때 그만두는 것으로 아쉬움은 없다"며 미소지었다. 캐나다의 발레 스타 이블린 하트(59)의 2006년 마지막 공연을 함께 하기도 한 '오네긴'의 타이틀롤 제이슨 레일리는 강수진에 대해 "영민하고 훌륭한 무용수"라고 치켜세웠다.

강수진은 한국 마지막 무대를 어떤 모습으로 장식할까. 11년 전 이 발레단의 '오네긴' 내한공연에서도 타티아나를 연기한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열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