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꾼 정은혜 "국악 세계화 충분히 가능"

입력 : 2015.06.17 09:49
국립창극단 대표하는 디바 출신
'여우락 페스티벌' 믹스&매치 공연
클래식 아우르는 판소리 세계화의 기대주
정은혜(31)를 판소리꾼으로만 한정짓는 건 부당하다. 목소리가 그 만큼 독보적이다. 한류스타 재즈보컬 나윤선(46)이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차를 멈출 정도니 말 다했다. '사뿐이 즈려밟고' 갈 만큼 한이 서려 있는데 도발적인 면도 있고 청초하기도 하다.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여우락 페스티벌'(여기, 우리 음樂(악)이 있다)의 예술감독을 맡은 나윤선은 이 페스티벌에 정은혜를 섭외했다.

그녀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었다. 재즈 그룹 '트리오 토이킷'의 리더로도 유명한 핀란드 피아니스트 이로 란탈라와 잘 어울릴 거라며 '여우락 페스티벌'의 '믹스 & 매치' 섹션에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하는 '판타스틱 투'(7월 24~2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기획했다.

정은혜는 지난해 말까지 국립극장 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의 대표적인 디바였다. '메디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등에서 주역을 맡아 호평 받았다. 그녀는 지난 2013년 초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뽑혔다. 이 창극단이 10년 만에 뽑은 신입단원 6명 중 한명이었다. 그런데 약 2년 만에 나왔다. 그리고 정은혜 컴퍼니를 설립했다. 국립극장은 "정은혜가 실력이 있다"며 '쿨'하게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세웠다.

15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난 정은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하는 '사부작사부작'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학구적이었고 무엇보다 소리 자체에 대해 뜨거웠다. -국립창극단을 나간 이유가 제일 궁금하다.

"주변에서 꾸지람 반, 칭찬 반 들었어요(웃음). 무엇보다 많은 분들이 좋은 경험을 했다고 입 모아 말씀해주셨죠. 재연, 여우락 페스티벌, 제야음악회까지 2년 동안 12개 작품을 했는데 모두 도전이었어요.

-국립창극단에서 무엇을 배웠나?

"배우라는 이름이요. 그동안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았죠. 25년 가까이 소리에 정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자유럽게 노래하는 사람이었는데 극을 하고 캐릭터를 만나서 배우를 했죠.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메디아'(그리스 비극을 바탕으로 한 국립창극단의 대표작으로 정은혜는 이 작품으로 첫 타이틀롤을 맡았다)할 때 '돌아이 눈빛' 같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네요(웃음)."

-이제 정은혜 컴퍼니의 대표다.

"제가 소소하게 음악 공연 기획, 컨셉화하고 제작 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이자 노래터죠.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다양한 소리 발성을 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사부작사부작 음악을 할 수 있는 제게 다락방 같은 곳이죠. 대중과 어떤 식으로나도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최근 정은혜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올해 여름 '파리 여름 축제'에 초청을 받게 돼 기뻐요."

-파리 여름 축제라니 대단하다.(1990년 시작돼 매년 열리는 파리 여름 축제는 실내외 공간에서 100여건의 공연이 열리는 프랑스 대표 축제다. 정은혜는 2013년 안은미 컴퍼니, 장영규가 이끄는 프로젝트 그룹 '비빙'과 함께 이 축제에 2번 방문했다.)

"2012년 국립창극단 인턴 때 제가 기획하고 장영규 음악 감독님 편곡으로 '소리꾼 정은혜 여인의 시간'이라는 아시아 민요 음악 공연을 1회 선보였어요. 몽골의 민가, 중국 소수민족의 소리 등 한국의 전통 소리꾼이 아시아의 다양한 전통 소리를 만나는데 의의를 둔 공연이었어요. 다른 나라의 민요는 잘 모르지만 소리에 대한 탐닉은 행복한 일이죠. 이번에는 몽골의 발성, 중국 소수 민족의 음악, 일본의 노가쿠 등을 해보려고 해요. 정은혜가 할 수 있는 득음은 무엇일까 25년 동안 고민을 해왔는데 계속 자신과 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성악은 뭐든 좋아해요. 본질적인 소리에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의 '믹스 & 매치' 작업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국립극장에서 다시 공연하는 만큼 어느 공연보다 부담이 크죠. 피아노와 성악이 만나는 양식적인 구조는 많이 있잖아요. 이로가 할 수 있는 거, 제가 할 수 있는 거를 하면서 한국의 정서를 음악적인 작업을 통해 잘 소개하고 싶어요. 나윤선 감독님이 이로는 싱어를 이해하는 친구라 다 맡기면 된다고 하셔서 마음을 놓고 있죠. 나 감독님 말씀대로 음악에 탄력이 있어요. 아직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를 계속 생각하면서 음악 작업을 구상하고 있으니 애절함이 생기면서 장기 연애하는 것 같아요(웃음). 리듬이나 음의 본질은 보편적으로 같으니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보여주자는 게 저의 생각이에요."

-클래식 음악 축제 '디토 페스티벌' 중 '언타이틀드(Untitled)'(18~19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크레디아 인터내셔널)에서는 멀티 정재일과 함께 슈베르트의 '마왕'도 들려준다. 가곡을 우리 소리로 들려주는 파격적인 무대다.

"정재일 감독님과도 국립극장을 통해 만났죠. 2013년 국립극장 제야음악회 당시 원일 감독님이 창극단 라이징 스타로 섭외된 저에게 판소리 말고 다른 것 해보자 하셔서 제가 정재일 감독님과 기타로 듀엣을 해보고 싶다고 제안 했죠. 제가 평소 좋아하던 보컬인 남미의 메르세데스 소사의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정재일 감독님에게 이번에 어떻게 할까 물어봤더니 당연히 '임프로바이즈(improvise·연주 등을 즉흥적으로 하는 것)라고 하더라고요. 꼭 판소리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했죠. 그래서 더 재미 있을 것 같아요."

-클래식은 원래 좋아하나?

"'마왕'은 5만번 들어본 것 같아요(웃음). 평상 시 음악 들을 때도 클래식 9, 국악 1의 비율로 들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이콥스키 듣고요. 2010년 여름에 독일 뮌헨 서머 페스티벌 당시 국립 뮌헨오페라 하우스에서 작업한 적이 있어요. 약 3개월 간 '피가로의 결혼'을 실험음악극으로 옮기면서 성악가들과 작업했죠. 일찍부터 서양성악에 관심이 많아 전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뮌헨의 실험 음악극을 참여하게 되면서 제가 하고 있는 한국의 소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현대적인지 알게 됐죠. 독일 디렉터가 당시 너의 소리는 고집스럽게 아름답다고 했거든요."

-공부 욕심이 많다고 들었다.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고 들었는데.

"총 6학기 중 4학기를 끝냈어요. 판소리로 실기 박사를 공부 중이에요. 배우면 배울수록 우주의 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한 없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공부를 통한 반성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판소리 세계화의 기대주다.

"나윤선 감독님이 이번에 이로와 듀엣 공연을 성사시켜주신 것도 다 그런 뜻이 있지 않나 싶어요. 억지로 세계화하지 않아도 우리 음악 존재 자체가 유일해서 세계화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캐나다 펍, 이탈리아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가서 노래를 하든지 일단 현지 사람들과 밀착해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2013년 파리여름축제 비빙 공연에서 범패 홋소리 중 복청게를 부르기도 했는데 현지 관객이 자신의 영혼을 마사지해줬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정은혜 컴퍼니를 통해 구상한 일들이 많을 것 같다.

"우선 여우락 페스티벌, 디토 페스티벌을 통해 관객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 다음 지금껏 판소리 완창을 7회 했는데 하반기에 심청전 완창을 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플레이어였는데 이제는 프로듀서 입장이 됐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음악 작업도 하고 싶고, 작창 공부도 더 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수식이 뭐냐는 우문에 "없다"고 현답했다. "틀 안에 가두는 것은 매력이 없네요"라며 웃었다. "단순히 판소리꾼으로 명명하기 보다는 판소리를 포함한 다양한 소리를 구사하고자 하는 언어 그대로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여우락 페스티벌' 7월 1일부터 26일까지. 나윤선, '올해의 아티스트' 허윤정, 국악 그룹 '불세출', 시인 고은, 국악 앙상블 '숨', 타악 연주자 스테판 에두아르 등이 나온다. 전석 3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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