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소프라노 황수미 "이제 1막 열었죠"

입력 : 2015.04.22 13:25
소프라노 황수미(29)를 모르는 클래식 팬이라면 메모해두자. 훗날 조수미(53)·홍혜경(56) 같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계보를 이을 수 있으니.

과장이라는 의심이 드는 청중은 황수미의 무대를 확인하면 된다. 지난 16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세계적인 가곡 반주자 헬무트 도이치(70)와 함께 한 무대,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부산시향과 협연에서 그녀는 마치 '아이돌 스타' 같았다.

21일 오후 광화문에서 만난 황수미는 청중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웃었다. "18일 공연은 앙코르를 준비 못했는데 계속 커튼콜을 받아서 첫 번째 곡을 다시 불렀다. 16일 공연은 도이치 선생님이 팝 콘서트 같다고 하시더라.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 나갔는데 청중들이 몰려 계셨다. 그런 적은 처음이라….(웃음)"

세계 3대 성악 콩쿠르로 꼽히는 '2014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황수미는 힘이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목소리로 단번에 외국 성악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독일 본 오퍼의 전속 가수로 유럽, 남미 등에서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가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발성과 표현력이 발군이다.

"도이치 선생님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으시더라. 특별히 배운 것은 없다. 대신 자주 거울을 보고 연습한다. 성악가는 시로 된 텍스트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로만 하는 노래는 그 소리만으로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황수미는 서울대 음대 시절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서울대 대학원 2년이 큰 전환점이 됐다. "내가 잘하려고 '미쳐본 적이 있나'는 생각이 들더라. 대학원에서 2년만 딱 미친듯히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 때도 아니면 '후회 없이 관두자'고 결심했지.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던 시기다. 연습실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발성을 찾고 연구했던 때다."

차세대 소프라노라는 짐이 무거울 법하다. "책임감이 물론 생긴다. 하지만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듯이 어릴 때부터 특출나게 잘했던 아이가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나는 스타일이라 믿는다. 운도 좋았고. 내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만큼 갚아야 할 내 몫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황수미의 서울대 음대 선배이기도 한 작곡가 이지수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작업한 '아리랑 콘체르탄테' 음반에 참여, '아라리요'를 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참여를 망설였다. 어린 소프라노가 벌써부터 퓨전 음악에 참여하는 것이니. 그런데 음악이 너무 좋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역시 반할 정도였고."

어릴 때 발레를 배우기도 한 황수미는 실제 다재다능하고 호기심도 많다. 방황하던 시기에 뮤지컬 오디션도 봤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현재 같은 매니지먼트사 아트앤아티스트 소속이자 '팬텀'으로 뮤지컬 데뷔를 앞두고 있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39)처럼 훗날 여러 분야에 도전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소프라노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나는 아직 '미생'"이라며 웃었다.

황수미가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외모. 시원스런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그녀는 '미녀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당연히 부담스럽다"면서 "한국에서는 서구적인 외모로 볼 수 있지만 독일 등 서양 사람 옆에 있으면 그냥 동그란 동양인"이라고 겸손해했다.

대구 공연에 이어 26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도 '세계가곡여행'이라는 타이틀로 도이치와 호흡을 맞춘다. 슈베르트의 '물레감는 그레첸'과 '클레르헨의 노래', 볼프의 '뫼리케 가곡집' 중 '세상을 피해서', 라흐마니노프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노래하지 마오'와 '꿈', 베르그의 7개의 초기 가곡, 슈트라우스의 '자장가'와 '세실리아' 등을 들려준다.

세계적인 성악가 요나스 카우프만(46)의 전속 반주자인 도이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황수미의 역량에 반해 그에게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아직 한국에서는 반주자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은데 유럽에서는 성악가와 반주자를 한 팀으로 본다. 그런 점이 참 신선했다. 그런 거장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이번 무대 역시 노래 전달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언어로 부르는 만큼 더 절실히 감정을 실어야 한다."

황수미의 이후 스케줄 역시 빼곡하다. 서울 공연이 끝난 뒤인 이튿날 독일로 돌아가서 28일부터 오페라 '투란도트' 리허설에 참여한다. 7월 '2015 대관령국제음악제' 참여를 위해 다시 한국에 왔다가 8월 브라질에서 투어를 돈다. 10월28일에는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황수미는 빠듯한 스케줄에도 "내 목소리에 맞지 않는 역을 무리하게 맡고 싶지 않다"는 현명함을 보였다. "커리어를 길게 보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거다.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발전했으면 한다. 그래서 끝까지 행복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나 혼자 즐거우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도록 전달에 더 신경을 쓰고."

소프라노 경력의 제2막을 여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웃으며 답했다. "이제 '오버추어'(Overture·서곡)를 끝냈다. 이제 1막 시작이다." 이 소프라노 앞날이 창창하다.

한편 도이치는 문화예술기획사 WCN과 함께 한 이번 내한에 바리톤 송시웅(1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테너 김세일(14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소프라노 김남영(22일 금호아트홀)과도 호흡을 맞췄다. 황수미 리사이틀. 3만~5만원. WCN. 02-3436-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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