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막춤엔 한국史의 한 세기 담겼더라"

입력 : 2015.01.27 03:00   |   수정 : 2015.01.27 10:13

[정극 '심포카 바리­이승편'으로 돌아온 안무가 안은미]

설화 '바리데기' 일대기에 춤·판소리 결합해 선보여
"바리데기는 한국판 '神曲'"

그녀는 연두색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다. "작년 스승의날에 컴퍼니 단원들이 선물해준 것"이라 했다. "쪼그맣죠, 신날 땐 시속 100㎞까지 뽑아서 어디든 타고 다녀요." 황금색 원피스에 핫핑크 귀고리를 달고 오렌지색 니트 모자를 눌러 쓴 그녀가 호탕하게 웃었다.

빡빡 깎은 머리와 튀는 옷차림으로 '파격'을 몰고 다니는 현대무용가 안은미(53)가 '심포카 바리―이승편'을 무대에 올린다. 전체 질감은 춤꾼 10명이 90분간 몸으로 새기는 무용. 그에 전통악기 5대와 드럼을 배치하고, 판소리와 정가·민요 소리꾼 6명을 더해 춤과 음악이 뒤섞인 혼합 장르로 발전시켰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딸이지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죽은 아버지를 살려내는 설화 속 주인공 바리를 중심에 뒀다.

안은미는 “패션에 무슨 철학까지 있겠어요. 당기는 대로 입는 거지” 하며 ‘심포카 바리’의 한 춤사위를 몸으로 보여줬다. /이태경 기자
안은미는 “패션에 무슨 철학까지 있겠어요. 당기는 대로 입는 거지” 하며 ‘심포카 바리’의 한 춤사위를 몸으로 보여줬다. /이태경 기자
황금색 원피스에 핫핑크 귀고리를 달고 오렌지색 니트 모자를 쓴 안은미는 “패션에 무슨 철학까지 있겠어요. 당기는 대로 입는 거지” 하며 ‘심포카 바리’의 한 춤사위를 몸으로 보여줬다. /이태경 기자

"바리데기는 단테의 '신곡'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어드벤처 액션 스릴러물이에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삶 속에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바리의 지혜로움이 재미있었어요. 바리도 사람이라 죽는 게 두려운데 그걸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철학을 담고 있잖아요. 버림받았지만 화해하고 용서하는 자세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바리에 빠져 살던 그녀가 딴 데 눈길 돌린 건 2010년. 안은미다운 유머를 담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할머니들의 막춤을 모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책임감에 억눌린 아저씨들의 흐느적거림을 담은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땐스', 고등학생 22명의 에너지 분출을 기록한 '사심 없는 땐쓰'등 '세대 댄스 시리즈'다.

"울엄마도 그렇고 할머니들 정말 재밌어요. 식민지 때 태어나 일제를 경험하고 6·25를 겪었죠. 애는 예닐곱씩 낳았고요. 특수한 몸의 체계를 기억하는 그분들이 추는 춤은 우리 아이들이 추는 춤과 인류학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어요. 돌이켜보면 조상들은 춤을 살고 싶을 때 췄더라고요."

다섯 명이 한 차로 한 달 동안 전국을 누볐다. 촬영 장비 빌리고 먹고 자고 하는 데 2000만원을 썼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분들도 춤출 때 얼굴은 다 웃고 계세요" 안은미는 "나는 막춤, 프리 댄스의 선두 주자"라며 "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한국 사람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춤에 대한 인식을 기록하는 거여서 막춤일수록 신나더라"고 했다.

1988년 생애 첫 작품이 '종이 계단'이었다. 사실 우리가 밟고 있는 건 종이로 만든 계단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삶이 견고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견뎌낼지에 대한 물음을 지금도 계속 묻는 거예요. 내 춤은 그래요."



28일 오후 7시30분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031)828-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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