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열기와 광기로 가득찬 '체호프標 막장드라마'

입력 : 2015.01.02 00:36

파더레스

"하느님 아버지, 안 계세요? 대답이 없으시다면 우린 모두 아비 없는 자식입니다. 아버지!"

셰익스피어 다음간다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작품 '파더레스'〈사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플라타노프는 이렇게 절규한다. 체호프 사후(死後) 20년 만에 발견된 이 희곡은 제목이 없었고, 보통 '플라타노프'나 '부정상실(父情喪失)'로 불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왜곡된 성적 욕구로 표출되는 근·현대 사회의 병리가 결국 신(神)의 부재 탓이라는 의미다.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젊은 미망인 안나의 귀향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고,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이들의 관계는 애정이나 채무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얼핏 요란한 치정극처럼 보이지만, 인물 설정은 치밀하고, 촘촘히 배치된 대사에는 당대 사회의 변화가 담겼다. 귀족과 전통의 몰락, 상인 계층의 부상, 피폐한 지식인의 몰골 등이다.

체호프는 열여덟 살에 이 작품을 썼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체호프 '숨겨진 4대 장막전'의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올린 연출가 전훈은 극의 시점을 현대로 바꿨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대신 캠코더, 비키니, 코스튬 플레이가 록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18세 소년'이 말하고 싶었던 당대의 실상을 전하기 위해, 체호프를 빛바랜 세계문학전집 속에서 꺼낸 셈이다.

훈련을 거친 배우들의 발성과 호흡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첫 번째 키스신 때는 객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실감 나는 연기를 보였다. '광란의 파티'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무대 뒤편의 연출가는 아이패드 앱을 통해 직접 디제잉을 한다. 맥주를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는데, 관객이 파티 장면을 제대로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다.


▷4일까지 대학로 아트씨어터 문, 만 18세 이상 관람가, (02)3676-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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