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찌개 '호' 불어준 환대 처음입니다"

입력 : 2014.12.04 00:59

유럽 오페라 극장서 뜨는 스타 테너 파볼 브레슬릭
6일 예술의전당 '오네긴' 렌스키 역으로 한국 데뷔

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테너 파볼 브레슬릭은“한국엔 정말 뛰어난 성악가가 많다. 서울에 노래방이 많은 걸 보니, 이유를 알겠다”라고 넉살을 부렸다. /예술의전당 제공
지난 7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올린 도니체티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자'에서 슬로바키아 테너 파볼 브레슬릭(Breslik·35)을 처음 봤다. 매년 여름 한 달간 열리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하나로 공연한 이 오페라는 현역 최고 소프라노로 꼽히는 에디타 그루베로바(68)가 주역을 맡아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루베로바 못잖게 박수를 많이 받은 이가 브레슬릭이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숨겨진 아들 젠나로 역을 맡은 브레슬릭은 부드러우면서도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어머니의 손에 독살당하는 비극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는 지금 베를린과 빈, 뮌헨, 런던 같은 유럽의 대표적 오페라하우스에서 한창 뜨고 있는 스타다.

이 앞길이 탄탄한 테너가 오는 6일 예술의전당이 만든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렌스키 역으로 한국에 처음 데뷔한다. 자신의 애인 올가를 넘보는 친구 오네긴과 섣부른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는 비극적 인물이다. "'오네긴'은 확실히 차이콥스키의 개인적 체험이 담겨 있을 겁니다. 잘못된 만남이 부르는 비극이랄까요. 오네긴과 올가, 렌스키와 타티아나가 성격상 어울리는 조합인데, 오페라에선 그 반대이거든요. 어쩌면 현실도 이런 잘못된 조합이 많지 않을까요?"

브레슬릭은 이미 런던과 뮌헨에서 렌스키를 불러 호평을 받았다. 그루베로바와는 2009년 뮌헨에서 올린 '루크레치아 보르자'에서 처음 만났다. "이런 대선배와 함께 노래하는 것은 물론 대단한 영광입니다. 전설적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와도 함께 노래한 스타인데요. 무엇보다 따뜻한 분이에요. 저에게도 파바로티가 될 꿈을 꾸지 말고 브레슬릭 너 자신이 되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나이 차이만 33년이나 나는 그루베로바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연인 사이로도 무대에 섰다. "나이 차이를 느끼지 않느냐고요? 목소리만 들으면, 너무 젊어서 착각할 정도라니까요."

브레슬릭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 아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집에서 곧잘 대중가요를 불렀다. "열두 살 때쯤 도서관에서 레코드판을 빌려왔어요. 팝 음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푸치니 '투란도트'였습니다. 하루 만에 거기 나오는 노래를 모두 외워서 불렀어요. 오페라 가수가 될 운명이었던 모양입니다." 이후 브라티슬라바의 음악원에 들어갔고, 오페라 가수의 길을 가게 됐다.

"서울에 오려고 예정된 콘서트 두 개를 취소했어요. 그런 일은 거의 없는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거든요." 브레슬릭은 "숙소 근처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먹는데, 뜨거워서 주춤했어요. 부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와서 입으로 찌개를 호호 불어주는데, 이런 따뜻한 환대는 처음이에요"라고 했다. 이 호기심 많은 성악가는 "서울의 궁궐도 가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내년 봄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차이콥스키 오페라 콘서트 '예브게니 오네긴', 6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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