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自由黨 현판 글씨엔 권력 의지가 담겼다

입력 : 2014.11.18 05:50   |   수정 : 2014.11.18 13:59

[예술의전당 '서로書로' 경매]

이승만 前대통령 친필부터 장욱진 작품까지 190여점…
서예박물관 리모델링 위해 컬렉터·작가 자발적 기증

묵향(墨香)에 취하고 필기(筆氣)에 놀란다. 20세기 명사들의 친필과 선승의 선필(禪筆)을 한데 모은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글씨가 뿜어내는 팽팽한 기운에 아찔했다. 한 바퀴 둘러보면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다'는 청나라 문인 유희재(劉熙載)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술의전당이 서예박물관 리모델링 기금을 마련하려고 전시와 경매 '아트 옥션 서로 서(書)로'를 개최한다. 서예·고미술 작품은 물론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과 명사 휘호 등 190여점(추정가 20억원 상당)이 경매에 출품됐다. 26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되며 경매는 26일 오후 6시 30분부터 열린다.


 

장욱진 ‘마을’. 10×28㎝. 종이에 유채.
장욱진 ‘마을’. 10×28㎝. 종이에 유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친필로 쓴 '자유당중앙당부(自由黨中央黨部)' 글씨가 가장 눈에 띈다. 1951년 12월 자유당 창당 당시 직접 쓴 당사 현판 원본이다. 폭 46㎝, 길이 185㎝. 굵고 대범한 필획과 글자 짜임새에서 강한 권력의지가 엿보인다. 이동국 서예부장은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와 상징성이 크다"고 했다. 추정가 3500만원.

백범 김구가 1949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虹口·홍구)공원 거사를 기념해 쓴 폭 40㎝, 길이 113㎝ 대형 휘호 '산악기상(山嶽氣像)'(3000만원)도 나왔다. 윤 의사의 거사를 향해 '산악같이 드높은 기상'이라고 쓴 것. 안창호, 장지연, 송진우 등의 희귀한 휘호도 최초로 공개된다.


 

①이승만 친필 ‘자유당중앙당부’. 46×185㎝. ②최정화 ‘Alchemy&Cosmos with KABBALA’. ③권오상, ‘두상과 토르소’. 사진인화지, 혼합재료.
①이승만 친필 ‘자유당중앙당부’. 46×185㎝. ②최정화 ‘Alchemy&Cosmos with KABBALA’. ③권오상, ‘두상과 토르소’. 사진인화지, 혼합재료.
20세기 선승들의 글씨에선 성정과 기질이 그대로 묻어난다. '님의 침묵'으로 알려진 만해 한용운의 시고가 처음으로 출품돼 주목된다. '진흙 속에서도 물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내지 않네/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라는 내용의 칠언시. 침착하고 느긋한 운필과 광대무변한 글자 짜임새에서 만해의 깊은 선미(禪味)가 읽힌다. 추정가 5000만~7000만원. 청담, 탄허, 만공, 효봉, 한암 등 개성이 뚝뚝 떨어지는 선필이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현대 서예 작가와 캘리그래피 작품도 함께 나왔다. 이동국 부장은 "현대 서예와 캘리그래피 작품이 경매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며 "경매가 성사된다면 서예 역사상 현역 작가가 시장에서 작품을 정당한 가격으로 평가받는 첫 사례가 된다"고 했다.

현대미술은 컬렉터들이 기증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장욱진의 1958년 작 '마을'이 대표작. 1958년 당시 부산 국제신문사 부근 다방 벽화의 모티브가 된 원화다. 전후의 참담한 시대상 속에서 '이상향'을 꿈꾸며 그린 이 작품은 한국적 서정성이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벽화는 다방과 함께 사라져버렸으나 종이에 엷은 유화로 그린 원화가 남아 감동을 준다. 추정가 2억~4억원.

해외에서는 아트센터 건립 등 공익 목적의 기금 마련 경매가 종종 열리지만 국내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처음이다. 컬렉터와 작가들이 취지에 공감해 기꺼이 작품을 내놨다. 경매 수수료는 서예박물관의 리모델링 기금으로 조성되고, 기부자들의 이름은 서예박물관에 기록될 예정이다. (02)580-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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