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와 만난 관능적 백설공주

입력 : 2014.11.14 00:48

발레 'Snow White' 안무가 앙쥴렝 프렐조카쥬

"내 발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달라요. 의붓딸을 희생할 정도로 자아도취에 빠져 성적인 유혹을 멈추거나 여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백설공주의 새엄마에 초점을 맞췄어요. 엄마인데 여자인 그녀는 핏덩이 아기가 탐스러운 숙녀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화나고 한편으론 힘 빠졌을 거예요. 그녀는 우리 세대를 대변해요. 예전에 40대 여성은 늙은 여자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60대 여성도 아름답고 성적 매력을 듬뿍 발산하고 있잖아요."

프랑스 안무가 앙쥴렝 프렐조카쥬(Preljocaj·57·사진)가 만든 발레 'Snow White(스노 화이트)'는 두 여인이 새빨간 사과를 기점으로 죽고 죽이는 소용돌이에 빠졌다가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매혹적인 어른의 이야기로 풀어낸 컨템포러리 로맨틱 발레다. 패션계의 '악동'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의상을 도맡았다.

프렐조카쥬는 1995년 발레 무용수 최고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상을 받은 정상급 안무가다. 고전과 현대사회, 발레와 현대무용을 능란하게 섞고 비틀어 완성도 높은 공연을 이끌어낸다. 2001년 '봄의 제전'에서 제물로 바쳐진 여인의 근원적 공포를 알몸 발레리나로 표현해 무용계를 충격에 빠트렸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설득력이 높아서 파격에만 집착하던 당시 누드 공연의 수준을 예술의 경지로 단박에 끌어올렸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Snow …'도 몸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 공간의 느낌,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극 흐름에 맞게 발췌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타고 무용수들이 춤춘다.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프렐조카쥬는 "동화 '백설공주' 이야기가 뼈대이지만 그림(Grimm) 형제 원전의 잔혹하고 관능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충만한 감성, 모던한 선율이 공존하는 말러 교향곡과 잘 맞는다"고 했다.


 

왕비가 독이 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먹이는 장면. /현대카드 제공
왕비가 독이 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먹이는 장면. /현대카드 제공
막이 오르고 백설공주가 태어날 때 펼쳐지는 교향곡 2번 '부활'의 5악장은 현악기의 날카로운 외침과 끊어짐으로 새 생명의 불길한 미래를 미리 알려준다. 교향곡 1번 3악장이 흐르는 '난쟁이들의 춤' 장면이 특히 재밌다. 곡 주제는 장엄하고 무게 있는 '거인'인데 등장인물은 일곱 난쟁이. 그들은 백설공주를 구하려고 등산용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며 군무를 춘다.

클라이맥스는 독사과를 먹고 죽은 채 누워 있는 백설공주를 왕자가 발견하는 장면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교향곡 5번 4악장(아다지에토)이 쓸쓸히 흐르는 가운데 왕자는 의식 없는 공주를 안고 춤을 춘다. 안무가에겐 최고의 장면이지만 무용수들에겐 까다로운 장면이다. "왕자는 그녀에게 '아듀(안녕)'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걸 거부하고 싶은 몸짓을 보여줘야" 한다. 프렐조카쥬는 "요동치는 감정을 움직이지 않는 육체로 표현해내는 게 가장 어렵고 재밌었다. 말러의 날개를 타고 꿈속을 유영하는 기분을 맛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14일 오후 8시, 15일 오후 5시, 16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577-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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