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미디어아트 + 몽롱한 춤=섬뜩한 童話

입력 : 2014.10.28 00:06

25일 홍콩아트센터서 열린 이경옥 무용단 '안데르센…'

허공에서 하얀 주머니 3개가 나란히 내려온다. 그 안에 여성이 한 명씩 담겨 있다. 귀를 두드리는 강렬한 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격하게 휘젓는 그녀들. 움직일 때마다 쫀득하게 늘어나는 천 주머니 위로 어린아이의 커다란 눈동자를 그려낸 영상이 맺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눈이 언제나 맑다는 건 거짓말. 그 눈동자는 피 맺힌 듯 붉고 얼음처럼 파랗고 끝없이 새카매서 기괴하다.

25일 오후 7시 30분(현지 시각) 홍콩섬 북부에 자리한 홍콩아트센터에서 이경옥 무용단의 '안데르센의 시선들'이 펼쳐졌다. '안데르센…'은 현란하게 움직이는 미디어아트 영상(작가 최종범)과 동화 주인공으로 분한 무용수들의 몽롱한 춤을 결합한 현대무용이다. 어린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기이하고 특이하게 그려낸 그림(팝 아티스트 마리 킴)을 영상의 재료로 삼았다. 이경옥 무용단은 선악이 뒤엉킨 인간의 을씨년스러운 내면을 동화에 빗댄 작품들로 2012년 대한민국 무용대상을 받았다.

(왼쪽 사진)동화작가 안데르센을 상징하는 남자 무용수가 헤어날 수 없는 죽음의 끈으로 자기 자신을 묶어버리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른쪽 사진)안데르센의 동화‘눈의 여왕’속 새하얀 눈송이가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순수를 뜻하는 여성 무용수들이 춤추고 있다. /이경옥 무용단 제공
(왼쪽 사진)동화작가 안데르센을 상징하는 남자 무용수가 헤어날 수 없는 죽음의 끈으로 자기 자신을 묶어버리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른쪽 사진)안데르센의 동화‘눈의 여왕’속 새하얀 눈송이가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순수를 뜻하는 여성 무용수들이 춤추고 있다. /이경옥 무용단 제공
해피엔딩은 환상이고 실상은 배신과 탐욕,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차가운 눈송이가 무대 삼면을 훑는 가운데 맑은 꿈을 꾸는 여성 무용수들의 몸짓은 처연했다. 힘겨운 삶에 넋이 나간 남성 무용수가 죽음을 목에 걸고 힘겹게 나아갈 때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음산하고 섬뜩한 한 편의 잔혹 동화였다.

'안데르센…'은 여러 명의 무용수가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 천장에 매달린 채 춤추는 안무가 색달랐다. 미디어아트와 무용이 손잡는 경우는 드문데, 이 작품은 두 장르가 저항감 없이 어울렸다. 그러나 공연 초반, 무용수들 몸을 훑으며 소통하던 영상과 춤이 후반으로 갈수록 차츰 분리되다 결국 따로 기능하며 끝나는 부분은 아쉬웠다.

지난달 27일부터 다음 달 중순까지 홍콩에서 열리는 '제4회 한국 10월 문화제(Festive Korea)' 초청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홍콩댄스컴퍼니의 양완토우 예술감독이 적극 추천했다. 양 감독은 "강렬한 현대감을 갖췄고, 조명과 음향을 적절히 활용해 작품 효과를 극대화했다. 무용수들 개개인의 전문성이 동작마다 녹아 있어 매혹적이었다. 홍콩 관객에게 한국 현대무용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느끼게 해줬다"고 평했다.

홍콩 중심가를 점령한 민주화 시위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주요 도로마다 교통이 통제돼 차량 정체가 극심했지만 현지인들 삶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평안했다. 이날도 홍콩 현지인과 외국인 등 200여명이 객석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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