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요 부르면 안되나… 두 성악가의 당당한 '外道'

입력 : 2013.05.29 23:30

['향수' 부른 스승 박인수… 그의 제자 류정필은 가요 앨범]
가요 불러도 '성악' 드러나게…
우리 시도가 클래식 모독이다? 댄스·뽕짝… 장르엔 우열 없죠

이들 성악가 사제(師弟)는 '크로스오버 외도'까지 닮았다.

스승인 테너 박인수(74) 백석대 음악대학원장(전 서울대 교수)은 1989년 가수 이동원씨와 정지용 시(詩), 김희갑 곡의 '향수'를 불렀던 '크로스오버의 원조'. 당시 음반은 반년 만에 70만장이 팔렸다.

이번엔 제자인 테너 류정필(45)이 '크로스오버 대열'에 합류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바람이 분다'(이소라) 등 가요 12곡을 모아서 음반 '끌림'을 발표한 것. 성악가가 음반 한 장을 모두 가요로만 채운 건 드문 일이다.

명곡‘향수’를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부른 테너 박인수(오른쪽)와 가요로 채운 음반을 펴낸 테너 류정필은 크로스오버 시도까지 빼닮은 사제 관계다. /김성현 기자
명곡‘향수’를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부른 테너 박인수(오른쪽)와 가요로 채운 음반을 펴낸 테너 류정필은 크로스오버 시도까지 빼닮은 사제 관계다. /김성현 기자
―크로스오버 작업은 왜.

박인수 "1989년 가수 이동원씨가 먼저 정지용의 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정지용 시를 읽는 순간 미꾸라지를 잡으러 개울을 헤집고 다니던 유년 시절의 고향 풍경이 떠올랐다. 작곡가 김희갑씨가 두 가수의 음역과 음색을 맞추느라 고생했다. 몇 번이고 작곡이 중단됐고 간신히 설득해 7개월 만에 곡이 나왔다."

류정필 "삼수 끝에 간신히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는데, 배우고 싶은 스승을 적어내라기에 주저하지 않고 교수님 이름을 썼다. 내가 입학했던 해에 '향수' 인기가 폭발했다. 선생님 모시고 길거리를 다니면 팬들 사인 공세에 민망할 정도였다."

―여전히 크로스오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향수'를 부른 직후인 1991년 국립오페라단의 단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성악가의 품위 손상'이 사유였다. 외국에서는 오페라 가수가 뮤지컬에 자유롭게 출연하고, 플라시도 도밍고(테너)도 존 덴버와 이중창을 불렀다. 성악가가 가요 부르는 게 클래식에 대한 모독인가. 발성이나 창법 연구 없이 클래식을 대중가요처럼 부르는 게 모독이다. 재즈든 댄스 음악이든 뽕짝이든 장르 자체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2007년 국립오페라단에 입단했는데 그때 역시 '열린 음악회'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부 무대에 출연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말을 꺼낼 용기가 안 났다."

―곡 선정의 기준은.

"무엇보다 내 음성과 잘 맞아야 한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와 송창식의 '우리는'은 녹음까지 마쳤지만 결국 음반으로 내놓지 않았다. 비틀스는 자연스럽지 않았고, 송창식 노래는 격식에서 벗어난 해탈의 느낌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원가수가 너무 잘해서 포기한 경우라고 할까."

"성악가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곡인지 아닌지 불러보면 금세 안다. 이승철의 '말리꽃'이나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는 부르고 싶었지만 포기한 경우다. 음반에 담긴 '사랑 그놈'(바비 킴)도 원곡의 느낌이 워낙 강해서 새벽 두 시까지 녹음을 거듭했다."

―오페라와 가곡을 부를 때와는 창법도 다르지 않은가.

"탁성(濁聲)이 빠지면 판소리가 아닌 것처럼 크로스오버라도 성악적 요소가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힘을 빼서 불렀다. 힘을 뺄수록 결과는 좋았다."

"크로스오버라고 해도 결국 성악이라는 본질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출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