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가의 '작품' 모방한 인테리어 소품은 有罪? 無罪?

입력 : 2013.05.13 03:03
지난달 23일, 중견 추상화가 하태임(40)씨는 지인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작가님, 요즘 작품 반응이 좋은가 봐요. 강원도 고급 리조트에 워크숍 왔는데 작가님 그림이 엄청 많아요!" 하씨는 강렬한 색상의 컬러 밴드(color band)를 중첩시키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지인이 얘기한 강원도 홍천의 대명 리조트 소노펠리체에서 작품을 의뢰받거나 판매한 기억은 없었다.

하씨는 그날 저녁 리조트에 '컬렉터'로 신분을 숨기고 직접 찾아갔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 복도에 6점(35.3×44.5㎝), 화장실 입구에 1점(117×150㎝)의 "모조품"이 걸려 있었다. 하씨는 "명백히 내 그림 스타일과 특징을 조악하게 모방한 그림이었다"고 했다. 작가는 자체 갤러리까지 갖춘 이 리조트의 '친절한' 응대에 한 번 더 놀랐다. "아, 그 그림요? 하(태임) 작가님 스타일로 프린트한 인테리어 소품이에요. 원하시면 작가 정보를 메일로 알려드릴게요."

하태임의‘Un Passage’(2006·왼쪽 그림)과 리조트에 걸려있던 모작. /하태임 작가 제공
하태임의‘Un Passage’(2006·왼쪽 그림)과 리조트에 걸려있던 모작. /하태임 작가 제공
하씨는 법률 자문을 받아 지난달 30일 해당 리조트에 "미술 저작권과 저작 인격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작가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킨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외국의 경우,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한 사진가의 사진을 모방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가 거액의 손해배상을 했던 사례(1988년) 등을 거치며 인식이 크게 개선됐다. '모방 천국' 오명을 가진 중국의 상하이 허핑판뎬(和平飯店) 호텔이 자국 작가 리서우바이(李守白)의 모작을 커피숍에 걸었다가 피소(2011년)됐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베꼈더라도, 베낀 주체와 '의도'가 명확한 경우엔 '패러디'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이 리조트 관계자는 "인테리어는 저작권 문제를 포함해 디자인 하도급사가 책임을 지고 진행한 일이다. 우리도 대단히 난처하다. 법적 판단을 떠나 도의적인 문제 의식을 갖고 문제가 된 소품은 내렸으며, 작가에게도 연락을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씨는 "많은 작가가 저작권 침해 문제로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지식이 부족하고 절차가 번거로워 눈감아 온 관행을 깨고 싶다"고 했다. 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소장은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해외 작가 이미지 무단 사용 관행 등은 국가 간 통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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