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 작곡에도 호흡척척… 30년 內功 '세 명의 자렛'

입력 : 2013.05.12 23:42

[19일 내한, 키스 자렛 트리오… 먼저 열린 日 공연 가보니]

30년 함께한 디조넷·피콕과' 올 오브 유'로 시작한 무대
허밍과 쉼 없는 "띠딧띳띠~" 온 힘 다해 소리 끌어내는 자렛… 앨범과는 전혀 다른 '別世界'

왼쪽부터 키스 자렛, 잭 디조넷, 게리 피콕.
키스 자렛 트리오를 음반으로만 들었다면 그들을 거의 모르는 것이며, 공연 실황을 DVD로 봤다면 조금 아는 것이다. 이 위대한 재즈 트리오의 진가(眞價)는, 공연을 직접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올해 결성 30주년을 맞은 이 트리오의 19일 내한공연을 앞두고 지난 9일 일본 도쿄서 열린 공연을 봤다. 이들의 30주년 기념 앨범 '섬웨어(Somewhere)'를 수십 번 듣고 갔으나 공연은 완전히 별세계(別世界)였다. 번지점프에 비유하자면, 음반은 구경하는 것이고 라이브는 직접 뛰어내리는 차이랄까.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68)이 이끄는 트리오는 도쿄 시부야 '분카무라(文化村) 오차드홀'의 사흘 공연을 모두 매진시켰다. 층고(層高)가 20m인 공연장의 3개층 2150석이 가득 메워졌다. 자렛은 허리가 안 좋아 전용 매트리스를 갖고 다니며 마사지사와 함께 세계 투어를 다닌다. 공연 직전 "뮤지션의 특별 요청이니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한국 공연에서 누군가 끝내 플래시를 터뜨리자 "당신을 저주한다"고 말했던 그다.

자렛은 1983년부터 20여장 앨범과 360여회 공연을 해온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78), 드러머 잭 디조넷(71)과 함께 무대로 나왔다. 예의 헐렁한 셔츠와 선글라스 차림, '되게 말 안 듣게 생긴' 얼굴도 여전했다.

트리오가 즐겨 연주하는 곡 '올 오브 유(All of You)'로 시작한 무대는 키스 자렛 솔로 콘서트처럼 현란하지는 않았다. "연주를 시작할 때 나는 음악의 씨앗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무(無)에서 시작한다고 할까요."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자렛의 피아노는 무슨 곡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알 수 없게끔 끝났다. 중간에 핵심 프레이즈(작은 악절)로 간신히 곡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연주 직후 알 수 있었던 곡은 '부치 앤드 부치(Butch And Butch)' 정도였다. 즉흥 연주가 아니라 즉석 작곡을 하는 그의 연주에서, 곡목은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다.

줄곧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연주한 자렛은 예전처럼 피아노 밑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타고 넘어가려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영락없이 개다리춤을 닮은 몸놀림도 없었다. 그러나 즉석 멜로디를 따라 허밍을 하거나 "띠딧띳띠~" 하고 쉴 새 없이 소리 내는 것은 여전했다. 그랜드 피아노가 애써 감춰두려는 소리를 안간힘을 다해 끌어내는 듯한 그의 표정은 30대 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1960년대부터 활동한 키스 자렛은 2010년이 돼서야 첫 내한 무대에 올랐다. 이번 한국 공연은 세 번째다. 그는“한국 관객들의 열정이 나를 다시 불렀다”고 말했다. /A&A 제공
1960년대부터 활동한 키스 자렛은 2010년이 돼서야 첫 내한 무대에 올랐다. 이번 한국 공연은 세 번째다. 그는“한국 관객들의 열정이 나를 다시 불렀다”고 말했다. /A&A 제공
자렛이 만들어내는 프레이즈들은 얼핏 각각 분절된 것처럼 들렸으나 수십 년 라이브 내공(內功)으로 건반 88개를 쥐락펴락하다가 마지막 손가락을 떼는 순간,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감동이 충만했다. 앙코르 첫 곡으로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Straight, No Chaser)'를 택하고 즉흥 속주(速奏)를 할 때 그의 두 팔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건반을 유린했다. 그렇게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정확하게 따라가는 게리 피콕의 베이스와, 온 힘을 다해 살살 치는 듯한 잭 디조넷의 드럼도 관객들의 얼을 빼놓았다. "이 트리오에는 세 명의 키스 자렛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인상적인 것은 일본 관객들의 감상 태도였다. 자렛이 발라드곡을 마치며 신생아를 요람에 뉘듯 건반에서 조심스레 손을 떼면, 10초 넘게 여음(餘音)을 듣다가 우레같이 박수를 쳤다. 트리오가 1980년대부터 일본서 공연해 온 이유를 알 듯했다. 한국 공연은 19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문의 (02)2187-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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