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에 바친 50년… 가장 넘고 싶은 산은 아버지의 '섬집 아기'

입력 : 2013.05.01 23:34

[오페라 '처용' 작곡가 이영조]

국악·클래식 접목시킨 '처용' 초연 후 26년 만에 첫 개정판
자장가·군가 작곡하신 아버지, 쉽지만 싫증나지 않는 곡 남겨… 그런 곡 쓰려면 난 아직 멀었다

작곡가 이영조씨는 곡을 쓰다 막히면 단풍나무가 우거진 정원으로 나와 대금을 분다. /용인=김성현 기자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의 자택에서 만난 작곡가 이영조(70·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는 딱 '시골 농부'였다. 씨감자와 고구마순은 동네 5일장에서 사오고, 옥수수가 열리면 새벽에 작곡할 때마다 '밤참'으로 요긴하게 쓴다. 그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으면 아내는 '대체 곡은 언제 쓰느냐'고 채근한다.

그러나 아내의 걱정과는 반대로 그는 분명히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다. 다음 달 8~9일 예술의전당에서 막 오르는 오페라 '처용'은 개막을 앞두고 작품을 90% 이상 고쳐 썼다. 1987년 작품 초연 이후 26년 만의 '개정판' 탄생이다. 오페라 외에도 가곡과 합창곡, 실내악과 피아노곡까지 그의 작품 20편이 올해 연주됐거나 연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와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위촉으로 새롭게 초연하는 창작곡도 4편.

그는 80여 년 된 낡은 야마하 피아노를 치면서 악상을 다듬는다. '섬집 아기'와 '어머님 마음'의 작곡가인 아버지 이흥렬(1909~1980) 선생이 1930년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들고 왔던 그 피아노다. 성한 구석이 없어서 부속을 다 바꿨지만 페달과 음향 판은 80여 년째 그대로다. 이 집안은 3대에 걸쳐 14명이 음악에 종사한다.

"아버지는 청첩장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뒷장은 작곡할 때 쓰셨어. 도레미 음표 대신에 1·2·3이라는 숫자로 빽빽하게 작곡하신 청첩장을 보면서 오선지에 옮겨 적고 반주를 붙이는 일은 자식들의 몫이었지."

1961년 이씨도 연세대 음대에 입학하면서 아버지의 길을 좇았다. 하지만 군 통역병 시절, "한국 전통 음악을 알려 달라"는 미군 사령관의 질문이 그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창피함에 그는 제대하고 국립국악원부터 찾았다. 한 살 연상의 정재국 명인(중요무형문화재 피리 정악·대취타 보유자)을 깍듯하게 '선생님'으로 모시며 4년간 피리를 배웠다. 지금도 이씨는 피리와 대금, 거문고와 단소에 두루 능하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이 유행하기 전부터 '국악과 클래식의 만남'은 그의 작곡 화두였다. 첼로의 미끄러지는 글리산도(glissando)는 그에게 거문고의 농현(弄絃)이었고, 피치카토는 술대로 퉁기는 거문고 소리였다. 정재국 명인을 위해 쓴 피리 협주곡과 첼리스트 정명화가 즐겨 연주하는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 오페라 '처용'과 '황진이'가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살면서 내가 잘한 일이 딱 하나 있다면 음악적 뿌리에 대한 질문을 한발 앞서서 던졌다는 것이지."

이씨는 "16마디로 된 아버지의 동요 '섬집 아기'가 두 시간이 넘는 내 오페라 '처용'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싫증 나지 않을 작품을 쓰려면 더 솔직해지고, 더 발가벗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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