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입담' 음악회?

입력 : 2013.03.20 23:25

강연·해설·구연 등 결합, 관객에 말 거는 공연 늘어
왜? 지적 허영 덜고 청중과 소통… 관객 수 감소 위기 타파 전략

클래식 음악회는 연주자와 관객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묵언(默言)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클래식은 침묵 대신 '말'을 건넨다. 철학 강연과 실내악 연주를 결합한 '철학 콘서트', 파워포인트로 무장한 해설 음악회, 탤런트의 구연을 곁들인 바이올린 독주회가 그렇다. 지난해 클래식 분야의 공연 횟수는 전국 1만5668회, 관객은 564만명(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이었다. 연주회당 평균 관객 376명에 불과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①"지적 허영과 '고립성' 깨겠다"

철학가 강신주(46)씨는 다음 달부터 마포아트센터에서 철학 콘서트 '필로소피(feelosophy)'를 분기마다 연다. 강씨는 17권의 단행본을 펴낸 인문학 저자. 철학(philosophy)과 감정(feel)을 결합한 제목처럼 콘서트 진행도 독특하다.

크네히트 4중주단이 하이든의 현악 4중주 '황제'와 '종달새'를 연주하면, 강씨는 그 중간에 서러움과 히스테리를 주제로 강연을 곁들이는 식이다. 그는 하이든의 '황제'에서 다른 사람 기분에 맞추느라 과도하게 즐거운 기색을 짓는 '히스테리'의 징후를, '종달새'에서는 장단조의 교차 속에서 기대와 좌절이 엇갈리는 '서러움'의 정조를 읽었다.

강씨는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감동하는 척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클래식에서 지적 허영을 덜어내고, 사회와 청중으로부터 고립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연주자들도 환영이다. 크네히트 4중주단의 임가진(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씨는 "철학자가 세상을 해석하는 시도는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같다. 연주자들이 벽에 부딪힐 때 인문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준다"고 했다.

②"작품의 숨은 뜻을 찾아보겠다"

2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독주회 제목은 '윤홍천과 정준호의 낭만 시대'다. 연주자와 해설자의 이름을 동등한 자격으로 걸어놓은 것이다. KBS 클래식 FM 진행자인 음악 칼럼니스트 정준호(41)씨는 1800년대 유럽 기상도와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까지 파워포인트에 담아서 낭만주의 음악을 재조명한다.

베토벤의 주제를 슈만이 가져오고, 슈만과 리스트가 서로 작품을 헌정했다는 해설이 끝나면, 라디오 공개 방송처럼 피아니스트 윤홍천(31)이 베토벤과 슈만, 리스트를 연주한다. 두 사람은 12월 12일 생일이 같은 열 살 차이의 '10년 지기'. 정씨는 "인터넷 시대에 단편적 정보의 나열은 무의미하다. 해설은 작곡가와 작품 사이에 숨어 있는 뜻을 밝히고 연계 고리를 이어주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③"딱딱하고 부담스러운 이미지 허문다"

탤런트 정준(33)씨는 28일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 교수(53·뮌헨 음대)의 독주회에서 구연을 맡는다. 투우 대신 꽃을 좋아하는 황소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영국 작곡가 리도우트의 곡 '황소 페르디난드'에서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대사와 해설을 낭독하는 것. 정씨가 클래식 음악회에 출연하는 건 처음. 정씨는 "드라마에서 느끼지 못한 긴장과 스릴에 벌써 떨린다"고 했다.

정씨의 '협연'은 같은 교회의 교우(敎友)인 이 교수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이 교수는 "막상 관객들이 듣기 원하는 건 연주자의 실제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클래식 음악은 좋지만, 딱딱한 분위기가 부담스럽다는 관객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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