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대 꿈꾸던 소녀… 이젠 첼로 들고 출근

입력 : 2013.03.08 00:04

첼리스트 양정인, 美 현대음악 실내악단 '크로노스' 입단

첼리스트 양정인

첼리스트 양정인(28)씨는 16세 때 미국 정상의 현대음악 실내악단인 크로노스 4중주단의 연주회에 갔다. 당시 바흐와 베토벤의 작품을 공부하던 여고생에게 탱고와 재즈, 록 음악과 현대음악을 온통 버무린 이들의 음악회는 충격이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에 말문을 잃었어요. 난생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에너지와 힘으로 넘쳤어요. 다음 날 곧장 그들의 CD를 모두 샀어요."

어릴 적 '우상'이었던 이 4중주단이 12년 뒤 그의 '직장'이 됐다.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은 크로노스 4중주단의 멤버로 영입된 것. 현재 미국 LA에 사는 그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2월 매니저의 전화를 받고 이틀간 오디션을 치른 뒤에 최근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디션에서는 인도 음악과 유대인 음악, 중국 음악까지 낯설고 새로운 곡들을 연주하며 내 모든 걸 꺼내 보여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크로노스 4중주단은 지금까지 800여 곡의 신작을 초연했으며, 40여 장의 음반으로 1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첼리스트 양정인씨가 합류한 미국의 크로노스 4중주단은 기존의 클래식 공연장 대신
레슬링 경기장 같은 무대에서 철사줄처럼 현을 걸어놓고 활로 긁어서 소리를 내는 파격
적 실험을 즐긴다. /크로노스 4중주단 제공
첼리스트 양정인씨가 합류한 미국의 크로노스 4중주단은 기존의 클래식 공연장 대신 레슬링 경기장 같은 무대에서 철사줄처럼 현을 걸어놓고 활로 긁어서 소리를 내는 파격 적 실험을 즐긴다. /크로노스 4중주단 제공
피아졸라의 탱고부터 지미 헨드릭스의 록 음악까지 이들의 '음악 재료'에는 끝이 없다. 전자 증폭은 물론, 활로 악기의 현 대신에 철사 등을 긁어서 소리를 내는 파격적인 실험으로 이름 높다. 2007년 내한 공연에서도 이들은 미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위촉받은 '선 링스(Sun Rings)'를 연주하며 국내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2006년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은 이들을 '우리 시대의 위대한 4중주단'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 4중주단의 5번째 첼리스트로 합류한 양씨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미와 유럽 등 4개 대륙에서 살았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태어난 곳은 한국 인천이었지만, 11세 무렵 자동차 라디오를 판매하는 아버지를 따라 남아프리카의 프리토리아로 이주했다. 지금도 그를 제외한 가족들은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는 남아프리카의 교회 합창단을 지휘한다. 양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배웠지만,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첼로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물론 커다란 첼로 케이스도 탐났고…"라면서 웃었다.

그는 16세 때 홀로 도미(渡美)해서 이스트만 음악 학교에서 공부했고, 21세 때는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의 북부 왕립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런 '국제적'인 이력이 음악적 시야를 넓히는 데도 톡톡히 도움을 줬다고 양씨는 말했다. "10대 시절에 들었던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에선 즉흥 연주가 무엇보다 중요했죠. 다양한 대륙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에 매력을 느꼈어요."

오는 6월부터 양씨는 크로노스 4중주단의 결성 40년 기념 공연에 합류할 예정. 그는 "조만간 한국 무대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