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년은 어느 만화에 있습니까

입력 : 2013.02.22 23:40

아트선재센터 '20세기 만화대작전-만화와 시대展'

'죽음으로 이끈 만화 흉내' '죽음까지 몰고 온 불량만화'…. 1972년 2월 초, 각 신문 사회면은 뜨거웠다. 평소 만화를 탐독하던 초등학교 6학년 정모(12)군이, 죽었던 사람도 살아나는 만화의 한 장면을 따라하다 목을 매 숨졌기 때문. 이후 사회 전반에서 '불량만화 척결운동'이 벌어졌다.

만화가 '사회적 해악(害惡)'으로 취급받던 1970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킥킥대며 만화를 봤다. 대부분의 만화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었고, 읽을거리 빈약했던 시절의 재미이자 감동이었으니까.

내달 17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20세기 만화대작전-만화와 시대展'의 1부 전시 '70년대 만화의 다양한 세계'는 1970~1979년 발행된 '추억의 만화' 230여권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만화들. 가운데 큰 사진은‘어깨동무’1976년 3월호,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임창의‘나의 로봇’, 강철수의‘사랑의 낙서’, 이두호의‘무지개 행진곡’, 고우영의‘고우영 임꺽정’. /아트선재센터 제공
1970년대를 풍미했던 만화들. 가운데 큰 사진은‘어깨동무’1976년 3월호,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임창의‘나의 로봇’, 강철수의‘사랑의 낙서’, 이두호의‘무지개 행진곡’, 고우영의‘고우영 임꺽정’. /아트선재센터 제공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 1970년대 발행됐던 각종 소년잡지는 당시 어린이들의 필독서. 매달 잡지가 발간될 때마다 용돈을 쥐고 서점으로 달려갔던 아이들이 진정 원했던 건 잡지보다 더 두툼한 '별책부록'이었다. 당시 규정상 잡지에는 만화가 내용의 30% 이상 실릴 수 없었기 때문에, 단행본 수준의 만화가 '별책부록'으로 발행됐다. 이두호의 '무지개 행진곡',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 등이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발행됐고, 허영만의 '각시탈'은 월간 우등생 부록으로 발간돼 인기를 끌었다.

가운데 난로를 놓고 국화빵 같은 주전부리를 팔던 만화방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환상의 공간. 소년들이 임창의 '나의 로봇' 등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울 때, 소녀들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미인들이 예쁜 옷을 입고 나오는 엄희자의 '따뜻한 밤길'등을 보며 환상을 품었다.

어린이 만화가 대세였던 70년대였지만 성인 만화도 그 틈을 비집고 어른들의 욕구를 채웠다. 고우영의 '수호지'와 '임꺽정',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김종래의 '암행어사' 등이 가판대에서 판매됐다.

전시에는 이 밖에 6·25 때 가족을 잃은 소년이 국군의 진격으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종진의 '호야의 증언' 등 반공 교육이 활발했던 70년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만화들도 소개된다.

전시장에선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4권,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5권 등은 제본책을 비치해 관람객이 직접 읽어볼 수 있도록 했고, 모니터를 통해 김종래의 '야담괴담' 9권, 고우영의 '사나이' 1권 등의 내용을 보여준다. 아트선재센터가 수다만화연구소와 손잡고 여는 이 전시회에 출품된 만화는 수집가 김현식(58)씨의 소장품 5000여점 중 일부. 3월 21일~4월 7일엔 1945~1960년 발간된 초창기 만화 200여권을 소개하는 2부 전시가 열린다. 관람료 없음. (02) 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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