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카라얀… 그들의 그림자가 나를 전진하게 했다

입력 : 2012.10.24 23:33

[11월 내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지휘자 아버지 따라 꿈 키워… 카라얀·므라빈스키가 스승
"콤플렉스는 날 이끈 원동력" 지금도 하루 6시간씩 리허설

지난 21일 독일 뮌헨 중심가 프로메나데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3층. 라트비아 출신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70)가 문을 열어주면서 반갑게 맞았다. 전날 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호령하듯 지휘했던 카리스마는 찾을 길이 없다. 손수 물을 따라주면서 뮌헨 명물인 초콜릿을 권했다. 그는 "물론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심장에는 그다지 좋지 않겠지만요"라며 웃었다.

그가 건강 걱정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96년 노르웨이 오슬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지휘하던 얀손스는 주인공 미미가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을 불과 7분 앞두고 심장 이상으로 쓰러졌다. 지휘자였던 아버지 아르비드 얀손스도 1984년 영국에서 지휘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세상이나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더 느리고 조용하고 깊은 음악들에 이끌린다고 할까요."

이 사건으로 그는 '사선(死線)에서 돌아온 지휘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얀손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거느리고 있다. 그가 "두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 악단들은 세계 정상 교향악단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언제나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들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이끌어준 원동력이 유년 시절의 '콤플렉스'였다고 말했다.

영국 古음악 지휘자 리처드 이가, 한국서 합동 연주회
다음 달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하는 마리스 얀손스. 그는“지휘자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를 따라서 세 살 때부터 오페라하우스로‘출근’했다. 극장은 언제나 내게‘집’이었다”고 말했다. /빈체로 제공
영국 古음악 지휘자 리처드 이가, 한국서 합동 연주회 다음 달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하는 마리스 얀손스. 그는“지휘자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를 따라서 세 살 때부터 오페라하우스로‘출근’했다. 극장은 언제나 내게‘집’이었다”고 말했다. /빈체로 제공

"열세 살에 라트비아에서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왔어요. 러시아어는 서툴렀고, 소련의 음악 수준은 까마득하게 높았어요. 사람들은 뒤에서 '아들에게도 아버지만 한 재능이 있을까'라고 수군거렸죠."

그는 "학교 수업이든, 음악이든 눈앞에 닥친 숙제들부터 하나씩 부딪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정교사에게 하루 4시간씩 꼬박 러시아어를 배우며 학교 수업을 쫓아갔다"고 했다. 레닌그라드 음악원 졸업 당시 금메달을 받았다는 그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아버지는 그에게 우상이자 넘어야 할 벽이었다. 얀손스는 "19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2위 입상하는 순간, 비로소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최고의 콘서트를 연 뒤에 퇴보하기보다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조금씩 전진하는 편이 낫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평생 간직하고 산다"고 말했다.

지휘자로서 그에게는 천운이 따랐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수장이었던 지휘자 므라빈스키와 베를린 필을 이끈 카라얀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다. "콩쿠르 입상 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4개월간 카라얀을 쫓아다니며 배웠지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그는 리허설과 무대 연출, 음반 녹음을 하며 단 한 순간도 쉬는 법이 없었어요. 음표 하나도 놓치는 법 없이 완벽함에 도달할 때까지 끝없이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성공 비결이라는 걸 배웠죠."

지금도 그는 연주회를 앞두고 하루 평균 6시간씩 리허설을 한다. 얀손스는 "어쨌든 지휘는 건강에도 좋은 운동"이라며 웃었다. 그의 말을 바쁘게 수첩에 적는 순간, 얀손스는 가볍게 어깨를 쳤다. "근데, 뮌헨 명물인 초콜릿은 맛보지 않을 거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내한 공연, 11월 20~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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