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경극과 발레가 만난 황홀한 무용극 '홍등'

입력 : 2012.10.22 10:54

중국 색채 짙은 무대
경극, 그림자극 중 중국 전통 문화 녹여낸 다채로운 레퍼토리 돋보여

2008년 내한 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중국국가발레단의 '홍등'은 짙은 중국 색채와 차원이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홍등'은 '발레'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무용극의 한계를 완전히 털어버린 강렬한 카리스마와 압도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첸 카이거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장예모의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이 무용극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발레보다는 뮤지컬에 가깝다. 덕분에 기존 서양 발레가 가지는 한계, 지나치게 잘 알려진 내용의 지루함과 단순한 레퍼토리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발레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그 이상의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하다.

이야기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중국의 봉건 영주인 지주에게 3번째 부인으로 팔려간 여주인공이 경극 배우인 연인과의 사랑이 들통 나 밀고자인 둘째 부인과 함께 처절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끝난다. 민중을 착취하는 봉건 체계의 폭력성이 젊은 남녀의 사랑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비판적인 내용은 중국 공산 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을 갖췄다.

발레로 다시 태어난 ‘홍등’의 매력은 그 내용보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표현력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강렬한 붉은 색조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거대한 홍등이 관객을 압도한다. 지주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경극 장면에서는 실제 경극 배우들이 등장해 라이브로 연주되는 경극 음악에 맞춰 발레리노와 경극 공연을 펼친다. 마작이나 그림자극 같은 전통문화를 활용한 장면은 처음 ‘홍등’을 본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음악과 의상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 총감독과 주제곡 '너와 나'를 작곡한 천치강(陳其鋼)은 중국 전통 음악과 클래식을 절묘하게 조합했다. 발레와 경극을 접목한 이 무용극이 강한 개성을 내뿜는 것은 안무나 의상, 무대보다 음악의 힘이 크다.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旗袍)를 응용한 발레리나의 의상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요염한 매력을 발산한다. 강렬한 색감과 섹시한 라인은 서양의 발레리나 못지않게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긴 발레리나의 동작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하면서 관객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세 명의 부인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한 의상과 소품을 통해 안무와 연기에 카리스마가 증폭된다.

무대연출은 2008년에 비하면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당시의 연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없고 기존 발레 작품과 유사한 장면이 여럿 있었으며 무대를 다소 좁게 쓴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또, 첫 공연이기 때문인지 발레리나들의 군무가 칼같이 맞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다행히 발레리노들이 하나같이 키가 크고 힘이 넘쳐 선 굵은 멋진 군무로 힘을 보탰다.

6회째를 맞은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국립극장과 Lim-AMC가 주최한 이번 공연은 천 석이 넘는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들의 박수소리로 공연의 성공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안병수PD absdizz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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