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古典에 불협화음이 끼어들었다… 어? 괜찮네

입력 : 2012.10.17 23:47

기돈 크레머 실내악단 내한 공연

셰프(chef)의 명성을 믿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색다른 조리법의 낯선 메뉴를 보고 놀란 느낌이랄까.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65)는 친숙한 고전은 기어이 다른 편성으로 편곡하고, 낯선 작품을 기어코 연주곡목에 편입시킨다. 이 때문에 연주회마다 기묘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크레머와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내한 공연 역시 이 공식에서 빗겨나지 않았다. 첫 곡인 브루크너의 현악 5중주 3악장 아다지오부터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버전을 연주했다. 바이올린에서 현악 합주로, 첼로 독주에서 다시 비올라 독주로 따뜻한 선율을 도란도란 주고받자, 현악 5중주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놓은 듯 입체감이 도드라졌다.

응접실에서 연주하는 실내악이라는 뜻의 카메라타(camerata)와 크레머의 이름을 합친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발트 3국의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기 위해 크레머가 1997년 창단한 실내악단. 말 그대로 '크레머의 방'에서 뛰놀던 연주자들이 세계 명문 악단으로 진출해서 '음악 교육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첫 곡이 끝난 뒤 노타이와 흰 셔츠의 편안한 차림으로 등장한 크레머는 21세기 들어 재조명 받는 소련 작곡가 바인베르크의 교향곡 10번을 전반부의 주요 곡으로 배치했다. 크레머는 악장 자격으로 단원들과 나란히 서서 연주하면서, 연주가 그저 답습이나 재현이 아니라 재조명이라는 걸 새삼 상기시켰다. 작품은 제1바이올린 내에도 소리에 층층이 시차를 둬서 다채로운 음향효과를 빚어내고, 고전적 형식에 불협화음의 요소를 삽입하고 있었다. 고전미와 혁신이 적절히 공존하고 있어 크레머의 모습과도 곧잘 어울렸다.

크레머는 후반부 첫 곡인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34번에서 협연자로 무대 한복판에 섰다. 군가처럼 결연한 현악 합주와 바이올린 독주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2악장에서 이날 연주회는 정점을 찍었다.

뒤이은 슈만의 첼로 협주곡도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버전을 택했다. 순수한 원리주의자들은 원곡에 손대거나 다른 편성으로 옮기는 걸 극도로 꺼리지만, 음악사의 빈틈을 찾아내고 익숙한 곡은 다른 각도에서 비춰본다는 점에서 크레머의 개방성과 유연함을 만끽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명성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작품 선택이 주는 불편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회는 게임처럼 스릴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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