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야외 오페라'의 꿈… 악몽과 길몽 사이

입력 : 2012.09.02 23:40
태풍으로 두 차례나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지각 개막한 오페라 '라 보엠'. 1막에서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가 로돌포의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부를 무렵,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무대 전면 소파 부근에 설치해둔 음향 증폭 장치를 건드리는 바람에 '삑' 하는 소리를 낸 것. 그동안 주최 측은 '국내 최초 자연 음향의 야외 오페라'라고 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 음향'은 지켜지지 않았다.

'라보엠'에서 이중창을 부르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왼쪽)와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ADL 제공
'라보엠'에서 이중창을 부르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왼쪽)와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ADL 제공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별다른 증폭을 거치지 않고 '날것'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들려줬다. 하지만 1~2일 연이틀 7000석 규모의 야외 무대에서 노래해야 하는 공연 특성상, 성악가 보호를 위해 무대 위에선 음향 보정 장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1~2막을 연이어 들려준 전반부는 불충분한 음량과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자 한 음향 사이에 어정쩡한 타협이 되고 말았다. 3~4막을 이어 공연한 후반에는 음향을 보강했지만, 이 때문에 3막 후반의 4중창에서 앙상블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물론 장점도 많았다.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의 연출가 나딘 뒤포는 1막 무대 뒤편에 눈 내리는 파리 정경을 영상으로 삽입해서 크리스마스 무렵 파리의 다락방 정취를 살렸다. 무대 전환이 쉽지 않은 야외 오페라 특성을 감안해서 주역이나 합창단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입장하는 세심한 동선도 돋보였다. 지난 4월부터 '라 보엠'을 단골 연주한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넘치는 자신감을 보였다. 미미 역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야외 오페라에서도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절창과 연기를 선보였다.

올여름 '라 보엠'은 최고 57만원에 이르는 고가 티켓 가격과 예매 부진으로 인한 공연 횟수 축소, 막판 '덤핑'에 가까운 할인 판매 등으로 화제보다는 논란을 낳았다. '라 보엠'이 19세기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낭만과 좌절을 그린 앙리 뮈르제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같은 논란은 아이로니컬한 현상이기도 했다. 이번 야외 오페라는 오페라의 기능이나 본질에 대해 되물을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씁쓸한 뒷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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