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백남준 탄생 80돌… 구보타 시게코, 남편을 추억하다]
그가 떠난 나이보다 내가 한 살 더 많아졌다니 신기… 배고프면 생라면 먹던 그
1964년 '플럭서스' 첫만남… 그립다, 너무나 너무나…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 소호(SoHo)의 허름한 5층 건물. 6년 전 세상을 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부인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5) 여사는 "지난봄 다리를 다쳐 움직이기가 어려우니 직접 철문을 열고 알아서 들어오라"고 했다. 4일 소호의 아파트에서 만난 구보타 여사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 휠체어, 남준이 타던 거예요. 저건 내가 남준을 추억하면서 만든 조각, 피아노 위에는 남준을 기리는 불단(佛壇), 남준이 만든 콜라주…." 1960년대 초 백남준의 사진을 일본 신문에서 보고 '반드시 잡겠다'고 결심했다던 구보타 여사는 둘이 32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에 백남준과의 추억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구보타 여사는 백남준 탄생 80주년(7월 20일)을 맞아 15일부터 약 20일 동안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백남준은 80세가 되면 회고전을 열겠다고 말하곤 했지요.
"생각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떴어요. 여든은커녕 74세까지 살고 싶다는 소망도 못 이뤘지요(백남준은 만 73세 6개월 때 별세). 나는 벌써 75세, 남준이 세상을 떴을 때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는 게 신기해요. 그래도 '8'은 참 좋은 숫자예요. 옆으로 뉘면 무한대 사인(∞)과 같잖아요. 요즘은 어쩌면 삶은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남준이 지구 위를 휙휙 날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가 돈을 벌려면 한군데 머물러서는 안 돼'라고 자주 말했었거든요."
―예전엔 백남준이 매일 꿈에 나온다고 했는데, 요즘도 그런가요.
"아, 꿈에 나오는 빈도가 점점 줄고 있네요. 마지막 꿈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2년 전 꿈을 많이 생각해요. 몸이 아파서, 겨울이면 찾곤 하던 마이애미에 가지 못하고 뉴욕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남준이 나와서 말했어요. '이리 와. 빨리 마이애미에 와. 추운데 왜 뉴욕에 있어.' 그 꿈을 생각하면 남준이 내가 걱정될 때만 꿈에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이 집에서 매일 남준에게 이야기해요. '먼저 가버리다니 정말 나빠. 언제나 함께 있겠다고 했잖아'라고 투덜대요. 언제나처럼 답은 없어요. 그냥 미소만 지어요."
―뉴욕에서의 추억이 많지요.
"남준과 나는 1964년 플럭서스(Fluxus·1960년대 시작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를 통해 만났고 그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공유했어요. 우리는 조지 마키우나스가 조직한 1964년 플럭서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죠. 젊은 시절 그는 행위 예술이라면서 신고 있던 신발에 물을 담아 들이켤 정도로 와일드했어요. 작업실에 가면 '배가 고파'라면서 생라면을 그냥 뜯어 먹고 있어 억지로 말린 적도 있어요. 도쿄에 있을 땐 아무리 만나달라고 졸라도 작업실에 처박혀 나오지 않던 남준은 뉴욕에 오자 나를 자주 만나줬어요. 외로웠던 것 같아요. 우리 둘은 비교적 가까이 살았는데, 전시를 보러 갔다가 함께 돌아올 때가 잦았어요. 남준이 '내 스튜디오에 놀러 올래' 하면 그다음은 '응응'이었어요."

―'응응'이라뇨.
"1960년대는 철없는 젊은 아이 같은 시대였어요. 젊은 남녀가 만나면 '안녕' 하고 입맞추고 바로 침대로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뉴욕은 더욱 그랬죠. 남준과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아…, 1960년대가 너무나 그리워요. 자유로운 '히피 타임'이었죠. 50년 사이 세상은 훨씬 보수적이고 답답해졌어요."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과 백남준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면서 스타가 됐지요. 질투가 나진 않았나요.
"플럭서스를 이끌던 마키우나스는 아방가르드를 앞세운 무어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전위'라는 정신은 같았지만, 거리를 무대로 삼은 플럭서스와 뉴욕시의 예산을 받아 카네기홀 같은 고급 공연장을 쓰던 아방가르드는 친해질 수가 없었어요. 무어만도 백남준과의 공연에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고, 마키우나스와 남준도 멀어졌죠. 나는 지금도 소수의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앞세운 플럭서스가 아방가르드보다 훨씬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믿어요."
―80번째 생일이 다가오는데, 백남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남준, 당신이 너무 그리워요. 당신도 나를 그리워했으면 해요.' 요즘은 내가 죽으면 남준이 있는 서울 봉은사에 함께 안치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마도 쉽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