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미술가들] 천재 예술가? 천재적 작품? 그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

입력 : 2012.06.25 23:35

행위극 연출가 남화연

천재적 영감을 타고난 예술가는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작품을 상상해내고 그것을 탁월한 솜씨로 구현해낸다고 알려져 있다. 안타깝지만, 이는 '천재 신화'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2012년 현재, 예술가들은 완결 구조의 작품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데서 벗어나, '상상 이상의 결과'를 작품에 담는 새 방법에 몰두하고 있다.

미술가 남화연(33)도 '상상과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저만의 방법을 계발해왔다. 그는 실존하는 정보에서 영감을 얻고, 그에 반응해 행동을 야기하는 몇 가지 법칙을 세운 뒤, 특정 상황에서 사건이 연출되도록 유도한다. 이어지는 후반기 작업에선 손에 넣은 드로잉·안무·영상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데 그 결과물에서 작업 과정의 모순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남다른 매력이다.

대표작 '오퍼레이셔널 플레이 2009 서울'에서 남화연은 간단한 희곡을 바탕으로 서울의 어느 아파트 타운에서 일종의 행위극을 연출하고 비디오로 촬영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대본 '작전하는 희곡'의 내용은 전형적인 희곡이라기보다는 상황적 사건을 유도하는 명령어 코드의 순차적 나열에 가깝다.

제1장의 시작은 이렇다: "삼나무 폭포./ 폭포 앞에 빙하 우뚝 서 있다. 여왕 등장한다.//여왕 작은 스위치를 켠다./빙하 제자리에서 돈다./빙하가 돌기 시작하자, 자줏빛 전사 들어온다…."

남화연의‘오퍼레이셔널 플레이 2009 위트레히트’.
남화연의‘오퍼레이셔널 플레이 2009 위트레히트’.
작가는 지인들을 배우로 섭외하고, 이 괴상한 희곡을 제시한 뒤, 할당된 캐릭터를 임의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했다. 연출가가 지급한 가면이나 모자를 착용한 배우들은 작전 장소에 불려 나와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런데 각자 고안한 몸짓을 반복하는 배우를 통제하는 것은 현장 연출자(작가가 아닌 제3자)의 목소리다. 촬영이 시작되면, 연출자는 배우들에게 '행동 개시'를 지시한다: "자 도세요, 됐습니다-." "왼쪽으로 가세요, 아뇨 오른쪽으로도요-." 그리고 작가는 이런 통제 요소를 최종 영상에 그대로 담았다.

2007년 처음 작성한 대본 '작전하는 희곡'은 역사적 군사작전의 명칭을 캐릭터와 무대·소도구로 전치하는 간단한 도표에서 출발했다. 작가가 수집한 22가지 작전명 가운데 여왕, 자살한 왕들, 킬러, 자줏빛 전사, 복서 등 열넷은 등장인물이 됐고 작은 스위치, 엘도라도 협곡, 사막의 폭풍 등 여덟은 장소와 소도구가 됐다.

이러한 남화연의 '작전 드라마'는 여러모로 우화적이다. '짜깁기한 영상에서 이야기를 보는 습속'을, '서사에 의존하는 현대예술제도'를, '아파트 타운의 군사적 구조'를, '예술적 연기의 자의성'을, '예술가의 상황 통제 능력'을 풍자한다.

게임의 법칙을 고안하고 미학적 사건을 연출해 세상의 측면을 비추려 애쓰는 이 신예는 코넬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9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최종 후보로 선발돼 3인 경쟁 전시를 치르는 등 일찌감치 예술계의 신성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아직 정식으로 개인전을 치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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