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은 9·11 추모연주까지… 클래식도 현실을 만난다

입력 : 2012.03.21 23:34

지난해 9월 11일 저녁 미국 뉴욕 링컨센터의 분수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뉴욕 필하모닉(지휘 앨런 길버트)의 연주 중계를 보기 위한 관객이었습니다. 복장은 편하지만 표정엔 진지함과 서글픔이 배어 있습니다. 같은 시각, 링컨센터의 에이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도 이미 관객들로 가득합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모습도 보입니다. 9·11 테러 10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이었지요.

앨런 길버트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자 공연장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연주회에 앞서 미국 국가를 함께 불렀지요. 무대 양쪽에는 성조기가 걸려 있고, 첼로처럼 앉아서 연주해야 하는 단원을 제외한 뉴욕필 단원도 모두 일어나서 국가를 연주합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9·11 테러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말러 교향곡‘부활’을 지휘하는 앨런 길버트. /뉴욕 필하모닉 홈페이지
뉴욕 필하모닉의 9·11 테러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말러 교향곡‘부활’을 지휘하는 앨런 길버트. /뉴욕 필하모닉 홈페이지
지휘자 길버트는 마이크를 잡고 "10년 전 우리가 사랑하는 뉴욕에서 일어났던 참사와 용기, 희생과 영웅심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라며 "현실이 이성을 압도했을 때조차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거리에서 노래하며 위로의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열면서 인류애를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선택한 곡은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입니다. 최근 이 영상('A Concert for New York'·DVD)이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길버트는 뉴욕 출신의 첫 뉴욕 필 지휘자로, 부모가 모두 뉴욕 필의 전·현직 바이올린 단원 출신이지요. 이날 연주회는 '뉴욕 필의 아들'이 뉴욕에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1963년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 이틀 뒤, 당시 뉴욕 필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모의 염을 담아 연주했던 곡도 '부활'입니다.

길버트는 '부활'에 대해 "희망과 슬픔, 기쁨과 같은 삶의 모든 측면을 일깨워주는 곡"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어둠과 시련에서 출발하는 1악장부터 뉴욕 필은 차분하면서도 결연하게 출발해서 절정에서 한껏 끓어 올랐다가, 현(絃)으로 다시 따뜻한 위무(慰撫)를 보냅니다.

평소 엄숙하기만 했던 클래식 음악이 공연장 밖의 현실과 만나고 있고, 본연의 임무인 연주를 통해 따뜻한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 같은 연주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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