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35년만에 이삿짐 싸는 '재즈 성지'

입력 : 2011.06.25 03:12   |   수정 : 2011.06.26 09:38

이태원 '올 댓 재즈' 건물주 "비워달라" 요청에 해밀톤호텔 뒤로 이전
"역사가 사라진다" 재즈팬들 안타까워

'한국 재즈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서울 이태원의 재즈 클럽 '올 댓 재즈'가 문을 연 지 35년 만에 처음 이사한다. 1976년 문을 연 이 한국 최초·최고(最古)의 재즈 클럽은 한국 대중음악의 문화유산(文化遺産)이다. 이태원 대로변 건물 3층에 있는 현재 자리에서 이달 말까지만 공연하고 7월 10일쯤 해밀톤호텔 뒤쪽 골목에서 이전 개업할 예정이다.

진낙원 사장은 재즈 팬으로 클럽을 출입하다가 아예 클럽을 인수해‘올 댓 재즈’를 운영해 왔다. 그는“35년간 한 자리를 지킨 클럽을 이사하려니 너
무 아쉽지만 새로운 전기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진낙원 사장은 재즈 팬으로 클럽을 출입하다가 아예 클럽을 인수해‘올 댓 재즈’를 운영해 왔다. 그는“35년간 한 자리를 지킨 클럽을 이사하려니 너 무 아쉽지만 새로운 전기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올 댓 재즈'가 35년 둥지를 떠나는 것은 계약 만료 기한인 이달 말까지 클럽을 비워 달라는 건물주의 요청 때문이다. 원래 건물주의 아들인 현 주인은 이 건물에 다른 업종을 유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 만난 '올 댓 재즈' 진낙원(54) 사장은 "나보다 재즈계에서 훨씬 서운해하더라. 역사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올 댓 재즈'가 보금자리를 떠난다는 소문이 퍼지자 재즈계는 "어떻게 성지(聖地)를 옮길 수 있느냐"며 아쉬워하고 있다. 반면 109㎡(약 33평)에 불과한 현재 클럽이 좀 더 나은 장소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기대도 생겨나고 있다.

진 사장은 "35년간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어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그의 가방에는 새로 입주할 건물의 조감도 뭉치가 들어 있었다. 새로 이사할 곳은 2층이 발코니처럼 설계된 복층 구조로,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넓다. 그는 "기왕 이사하는 김에 좀 넓은 곳으로 옮겨서 더 많은 관객이 공연을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는 주말 낮 공연도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멀리서 왔다가 헛걸음하는 손님이 있을까 봐 우리 가게는 1년 365일 열었어요. 현충일 단 하루 라이브를 쉬었죠. 그런데 이번에 이사하면서 한 열흘쯤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올 댓 재즈' 최초의 휴업이죠."

뮤지션들의 손때 묻은 악기가 세팅돼 있는‘올 댓 재
즈’의 무대. 한국의 거의 모든 재즈 뮤지션이 이 좁은 무대를 거쳐갔다. / 이덕훈 기자
뮤지션들의 손때 묻은 악기가 세팅돼 있는‘올 댓 재 즈’의 무대. 한국의 거의 모든 재즈 뮤지션이 이 좁은 무대를 거쳐갔다. / 이덕훈 기자
클럽이 문을 열던 해 19세이던 진 사장은 재즈를 들으러 이곳을 출입했다. 당시 사장은 중국계 미국인 마명덕씨. 그 밑에서 DJ와 지배인을 거친 진 사장은 1986년 마 사장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클럽을 떠맡았다. '올 댓 재즈'의 35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유일한 증인인 셈이다.

이곳은 한국의 거의 모든 재즈 뮤지션이 거쳐간 무대다. 현재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재즈 가수 나윤선 역시 무명 시절 이 무대에 섰다. 지휘자 겸 색소포니스트 정성조(65)는 30년 가까이 매주 일요일 이 무대에 서고 있다. 지금도 주말엔 남녀노소 관객들로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붐빈다.

"이 공간에 배어 있는 수많은 뮤지션들과 손님들의 들숨 날숨, 그 정열이 없어지는 게 가장 아쉬워요. 그래서 가능하면 지금 인테리어를 모두 뜯었다가 나중에 다른 곳에 복원하고 싶습니다."

35년간의 라이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역시 잼(Jam·즉석 협연)이었다. "한번은 정성조 밴드가 공연하는데 젊은 흑인 남자가 혼자 오더니 맥주 한 잔을 시키더라고요. 잠시 후 정성조씨에게 함께 연주해도 되겠냐고 묻더니 색소폰을 부는데 끝내주는 거예요. 미8군 연주자인가 했더니 케니 가렛(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출신의 세계적 연주자)이었어요.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짜릿한 무대였죠."

심야영업이 금지돼 있던 90년대엔 일본의 유명 트럼페터 히노 데루마사(69) 일행이 공연을 하다가 자정을 넘겼다. 할 수 없이 가게 셔터를 내리고 새벽 4시까지 모든 관객이 함께 밤을 새우며 공연을 봤던 일도 진 사장에겐 '잊을 수 없는 공연'이다.

진 사장은 "여전히 한국에서 재즈는 무드 음악이나 배경 음악 취급받는 찬밥 신세"라고 했다. "그렇지만 재즈를 열심히 듣고 연주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어요. 희망이 보이는 일이지요."

'올 댓 재즈'의 35년은 음악팬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들을 남겼다. 좌석이 꽉 차 문밖에서 유리창으로 공연을 보던 사람들, 창 밖 함박눈이 쏟아지는 걸 보며 듣던 재즈 캐럴, 좁은 무대 위 노장(老將)과 신예(新銳)가 금빛 악기로 일합(一合)을 겨루던 모습…. 더 이상 재즈팬들은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3층까지 오르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의 '올 댓 재즈'만이 갖고 있는 '낡음의 미학'은 사라지게 됐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씨는 "건물 외벽이나 건물 앞 보도블록에 글귀를 새기는 방식으로라도 한국 최초의 재즈클럽 '올 댓 재즈'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동에서 35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클럽 '올댓재즈'가 건물주의 요청으로 문을 닫고 새로운 둥지를 찾게 됐다. 진낙원 올댓재즈 사장은 "수많은 재즈 음악가들과 팬들의 손때가 묻은 클럽을 떠나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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