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애달픈 노래 화가의 가슴에 꽂혀…

입력 : 2010.12.20 23:45

'정마리의 正歌와 이수경의 헌신'展

〈정마리의 정가와 이수경의 헌신 〉전에서 공연을 보여주는 정마리. /아르코미술관 제공
진눈깨비가 내리던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는 궁금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정마리의 정가(正歌)와 이수경의 헌신〉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전시 오프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전시는 국악 전공자인 정마리의 공연에 이어 설치미술과 조각·회화 작품을 만들어온 이수경의 드로잉 180여점을 관람하는 구성으로 돼 있었다. 1전시장 공연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음(音)이 울려나갈 수 있게 작은 토굴처럼 제작된 무대를 발견했다. 불이 꺼지고 등장한 정마리는 무대에 앉아 시조에 곡을 붙인 정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곡은 님을 그리는 정인(情人)의 마음을 담은 내용으로, 청중은 가객(歌客)이 부르는 음에 몰입되다 정화(淨化)의 순간을 맞는 듯했다.

20여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2전시장으로 올라가자 정마리가 부른 그레고리안 성가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레고리안 성가 중에서 정마리가 선택한 곡은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Dolorosa)'로 예수를 잃고 애통해하는 성모(聖母) 마리아에 대한 곡이었다. 전시장은 성당 내부를 연상시켰으며, 이수경의 드로잉이 작은 성화(聖畵)처럼 펼쳐졌다. 이수경은 드로잉 작업을 하면서 '스타바트 마테르'를 비롯해 불교 범패(梵唄) 등 종교음악을 들었다. 그는 "하루종일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니 힘들 때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 확 열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드로잉에는 여인이 반복해 등장하는데 어떤 것은 아들을 잃은 성모이며, 어떤 것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나 작가 자신을 나타낸 것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업(業)과 무의식이 영적인 염원과 섞이면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이었다.

이수경의 드로잉. /아르코미술관 제공
이수경의 드로잉. /아르코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이수경이 정마리의 노래를 들으며 몸이 떨릴 정도의 감동을 받은 뒤 추진됐다. 이수경은 '헌신(獻身)'이란 표현처럼 그동안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서양미술과 자아를 풀어보고 싶은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마리의 공연은 관람객들이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우리의 전통음악이 서양의 시각예술과 만나 어떻게 변주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 입장료 2000원, 공연과 전시장(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3시) 입장료 1만원. (02)76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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