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콘서트] 서울 쌍문동 정현숙씨 집… 슈만이 눈앞에 있는 듯 행복을 전달한 클라리넷

입력 : 2010.11.14 23:16

[우리 동네 콘서트] 거실 음악회 2題

지난 토요일(13일) 오후, 조선일보와 서울시향이 주최하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메세나협의회·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우리 동네 콘서트' 캠페인(livingroom.chosun.com)이 서울 시내 가정집 두 곳을 찾아갔다. 서울시향 수석·부수석 주자들이 도봉구 쌍문동의 정현숙(49)씨 다가구주택과 강서구 우장산동의 김달원(62)씨 아파트에서 '거실 음악회'를 연 것이다. 동네 이웃의 거실에 모인 주민들은 국내 최고 연주자들이 지척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맘껏 즐겼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주부 정현숙(49)씨는 10년간 놓았던 바이올린 활을 얼마 전 다시 잡았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계기가 됐던 동네 성당의 관현악앙상블이 해체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신부님께 "앙상블을 없애면 안 된다"고 떼를 썼고, 성당에 나오는 주부들을 모아 바이올린 강습까지 하면서 앙상블을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

서울시향 수석 채재일씨(오른쪽)가 서울 도봉구 쌍문동 정현숙씨 다가구주택 1층 거실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서울시향 수석 채재일씨(오른쪽)가 서울 도봉구 쌍문동 정현숙씨 다가구주택 1층 거실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정씨가 '늦깎이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은 첫아이를 낳은 직후인 서른둘 때였다. 성당 미사 반주를 위해 앙상블이 생기면서, 중·고생과 청년들 틈에 끼어 바이올린을 배웠다. 3~4년 꾸준히 다니면서 재미를 붙였지만, 외환 위기를 맞아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악기를 잡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으로 교회 음악을 연주하면서 받았던 기쁨과 위로는 잊을 수 없었다.

13일 오후 5시 정씨의 쌍문동 다가구주택 1층 거실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국내 최고 클라리넷 주자로 꼽히는 채재일(32) 서울시향 수석이 피아니스트 정하은씨와 함께 이곳을 찾은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느닷없이 클라리넷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한 큰아들 성환(18)과 정씨가 다니는 성당의 '마리앙상블' 단원, 주일학교 아이들, 동네 주민 등 40여명이 거실 바닥에 옹기종기 앉았다.

"1894년 작곡가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 집에서 클라리넷 연주자 리하르트 뮐펠트가 브람스의 피아노 반주로 슈만의 환상 소곡을 연주했습니다. 116년 전 오늘, 바로 11월 13일이었습니다." 양창섭 서울시향 차장의 작품 소개에 이어 채재일씨가 3악장으로 이뤄진 '환상 소곡'을 들려줬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곡을 편곡한 '무궁동'을 연주할 때는 언제 숨을 뱉고 들이마시는지 모를 만큼 빠르고 현란한 기교에, 청중들은 넋을 잃었다. 슈만의 가곡 '가수의 위안' '헌정'을 편곡한 작품을 연주할 때는 노래하듯이, 헝가리 작곡가 벨라 코바치(Kovacs)를 연주할 때는 발을 구르고 마지막엔 환호까지 지르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등 채재일의 클라리넷은 변화무쌍했다.

채씨는 "어릴 때 식구들 앞에서 재롱 삼아 연주한 것 말고는 이렇게 작은 곳에서 공연해 본 것은 처음"이라며 "청중들이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떨렸다"고 말했다. "동네 이웃, 성당 신자들과 집 거실에서 이렇게 좋은 연주를 듣게 돼 너무 행복하네요." 정현숙씨는 내내 들뜬 얼굴이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