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티 서울 2010
조화와 생화 뒤섞인 꽃다발… 당나귀에 대한 상반된 시각…
이미지가 지배한 세상에 '신뢰'는 존재하는가
지난 12일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검표원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표를 보여달라"는 말을 기대했던 관람객은 뜻밖의 말을 듣고 자기 귀를 의심하게 된다. 잠시 후 검표원으로부터 '티노 세갈'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작가 티노 세갈이 꾸민 퍼포먼스였음을 깨닫는다. 티노 세갈의 〈이것은 새롭다〉란 작품으로, 검표원이 그날의 주요 뉴스 제목을 들려주고 관람객의 반응을 반영하는 퍼포먼스다. 새로운 정보와 자극을 원하는 현대인을 그리면서, 전시장과 관람객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라고 요청하고 있다.

티노 세갈의 작품을 통과한 뒤 만나는 것은 결혼식 같은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꽃다발이다. 빌럼 데 로이의 〈부케〉시리즈로, 화려한 꽃다발 안에는 생화와 조화가 섞여 있다. 어떤 것이 진짜 꽃이고 어떤 것이 가짜 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하나의 '꽃다발'로 인식하게 된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설치 작품을 통해 개인과 집단, 과거와 현재 같은 문제를 다뤄온 서도호는 애니메이션 영상 〈나/우리는 누구인가?: 유니-페이스〉에서 한국인의 얼굴뿐 아니라 런던·베네치아·도쿄·싱가포르 등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다양한 국적의 얼굴을 겹쳐지게 했다. 초상들은 결국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국적·인종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을 중심으로 경희궁 분관, 서울역사박물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에서 함께 열리고 있다. 경희궁 분관에 설치된 더글러스 고든의 비디오 설치작품 〈내 당나귀와 함께 하는 고행〉은 당나귀를 통해 인간의 통념을 꼬집고 있다. 당나귀는 중세 교회에서 무지하고 게으르며 무절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전설이나 우화에 나타난 당나귀는 인간과 친근하면서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같은 동물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여주면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체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발굽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당나귀의 대형 영상이 전시장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번 전시에는 태국 영화감독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프리미티브(Primitive)〉가 나왔다. 그는 설치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고 설치미술을 영화의 밑그림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작품 역시 태국 북동부 지역 소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있다.
심슨기념관에 전시된 조덕현의 〈허스토리 뮤지엄 프로젝트〉는 장소의 특징을 잘 살렸다. 조덕현은 '남성 중심의 역사'(History)가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역사'(Herstory)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심슨기념관에서 프로젝트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신문지로 포장한 스피커에서 요리법을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줘, 여성의 숨겨진 역사를 은유한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 비엔날레지만 첨단기술을 지향하기보다 아날로그적 접근을 보여준다. 서울역사박물관 뒷마당에 설치된 김순기의 사운드 설치작품 〈우물의 침묵〉은 기술발전에 환호하지만 말고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유도한다. 과거 왕궁에서 귀중하게 쓰였지만 지금은 말라버린 우물에 귀 기울여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했다.
전시는 11월 17일까지 열린다. (02) 2124-8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