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5.10 23:28
| 수정 : 2010.05.11 03:50

지난달 중순,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구스타프 말러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의 7대 도시 순회(巡廻)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말러 오케스트라는 유럽 전 지역에서 수십 회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20대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창단한 이후 25년 가까이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순회연주는 무척 빡빡한 일정이었다. 우선 리스본·파리·암스테르담 등 세 도시는 연주회가 붙어 있어서 아침에 도착해서 같은 날 저녁에 연주키로 하고, 그 이후 1주일간 빈·취리히·나폴리·마드리드를 강행군하기로 했다. 전세 비행기가 마련되어 있지만 시계같이 정확히 일정을 따라야만 차질 없는 순회연주가 가능했다.
그런데 리스본 연주 전날, 아이슬란드의 화산(火山)이 터졌다는 뜻밖의 뉴스가 보도됐다. 그 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공항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스본 연주가 시작한 시간에는 이미 파리공항이 닫혔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불과 몇 시간 안에 유럽의 전 지역이 거의 마비 상태가 되어 파리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오케스트라의 매니저와 직원들은 파리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300가지 이상의 가능성을 밤을 새우며 검토했다. 하지만 다음날 파리에 연주시간에 맞춰 도착할 방법이 없고, 그 다음 날의 암스테르담 연주조차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천재지변(天災地變)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연주(演奏)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시점부터 빈 연주회까지는 사흘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였지만, 이젠 사흘도 부족할 수 있었다.
우선 유럽 서쪽 끝에 있는 리스본에서 어떻게 유럽 한복판의 빈으로 들어갈지가 과제였다. 오케스트라 매니저는 빈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공항은 바로 로마였다.
7인승 개인 비행기를 어렵게 구해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저, 나와 관계자 등 7인이 우선 로마로 날아갔다. 로마공항에 밤 12시가 지나서 내린 뒤 그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빈을 향해 자동차로 떠났다. 13시간을 북으로 계속 달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했고 결국 다음 날 밤 12시가 넘어 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빈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머나먼 아이슬란드의 화산재 때문에 이탈리아를 자동차로 종단하면서 '우리는 항상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세계 곳곳에서 자주 일어나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건강과 가족, 보금자리와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각 오케스트라는 리스본에서 100인승 전세 비행기를 구해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빈으로 15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빈의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무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지크페라인은 브람스·말러, 그리고 20세기의 모든 전설적인 연주자들이 연주한 공연장이며, 빈 필하모닉의 집이기도 한 역사적인 연주회장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 못다 한 연주까지 다하고 싶다는 정열이 불탔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연주했고, 이번 투어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연주회가 됐다.
순회연주는 무척 빡빡한 일정이었다. 우선 리스본·파리·암스테르담 등 세 도시는 연주회가 붙어 있어서 아침에 도착해서 같은 날 저녁에 연주키로 하고, 그 이후 1주일간 빈·취리히·나폴리·마드리드를 강행군하기로 했다. 전세 비행기가 마련되어 있지만 시계같이 정확히 일정을 따라야만 차질 없는 순회연주가 가능했다.
그런데 리스본 연주 전날, 아이슬란드의 화산(火山)이 터졌다는 뜻밖의 뉴스가 보도됐다. 그 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공항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스본 연주가 시작한 시간에는 이미 파리공항이 닫혔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불과 몇 시간 안에 유럽의 전 지역이 거의 마비 상태가 되어 파리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오케스트라의 매니저와 직원들은 파리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300가지 이상의 가능성을 밤을 새우며 검토했다. 하지만 다음날 파리에 연주시간에 맞춰 도착할 방법이 없고, 그 다음 날의 암스테르담 연주조차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천재지변(天災地變)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연주(演奏)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시점부터 빈 연주회까지는 사흘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였지만, 이젠 사흘도 부족할 수 있었다.
우선 유럽 서쪽 끝에 있는 리스본에서 어떻게 유럽 한복판의 빈으로 들어갈지가 과제였다. 오케스트라 매니저는 빈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공항은 바로 로마였다.
7인승 개인 비행기를 어렵게 구해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저, 나와 관계자 등 7인이 우선 로마로 날아갔다. 로마공항에 밤 12시가 지나서 내린 뒤 그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빈을 향해 자동차로 떠났다. 13시간을 북으로 계속 달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했고 결국 다음 날 밤 12시가 넘어 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빈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머나먼 아이슬란드의 화산재 때문에 이탈리아를 자동차로 종단하면서 '우리는 항상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세계 곳곳에서 자주 일어나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건강과 가족, 보금자리와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각 오케스트라는 리스본에서 100인승 전세 비행기를 구해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빈으로 15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빈의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무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지크페라인은 브람스·말러, 그리고 20세기의 모든 전설적인 연주자들이 연주한 공연장이며, 빈 필하모닉의 집이기도 한 역사적인 연주회장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 못다 한 연주까지 다하고 싶다는 정열이 불탔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연주했고, 이번 투어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연주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