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날 데려가줘… 시궁창 같은 이곳에서

입력 : 2009.10.01 03:30

연극 '바다거북의 꿈'

박근형은 "말(言)이 창칼이 되지 않고 파리채만도 못할 땐 쳐내버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연출가다. 무대에 이른바 엘리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진지한 걸 못 참아낸다. 거칠고 헝클어진 인물, 어눌하지만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 박근형은 "불량식품 같은 연극이 때론 더 달콤하다"고 주장한다. 극단 골목길의 신작 《바다거북의 꿈》(김민정 작·박근형 연출) 역시 그런 맛이 났다.

아버지(윤제문)가 고향 섬으로 돌아온다. 살인 전과가 있는 그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노모(老母·고수희)의 사고 보상금이라며 포크레인을 강탈한다. 외동딸 학자(주인영)는 이장 자리까지 빼앗고 포크레인을 몰고 다니며 행패 부리는 아버지를 부정한다. 뭍으로 나가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던 그녀는 뭍에서 온 남자 승준(이승준)을 만나 다른 꿈에 빠진다.

《바다거북의 꿈》에서 폭력적인 아버지(윤제문·왼쪽)와 만복(박수영)./남산예술센터 제공
《바다거북의 꿈》에서 폭력적인 아버지(윤제문·왼쪽)와 만복(박수영)./남산예술센터 제공

이 이야기를 매만지는 박근형의 화법은 매력적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을 눈앞에 툭 던져 보여주는 데 희극성이 생긴다. 아버지는 의자를 짊어지고 등장하고, 무대에서 진짜 포크레인(1t)을 운전한다. 바보 병득(김주완)이 해설자 노릇을 한다. 또 언덕 위 하얀 집, 자전거, 골프, 선탠과 우유 등으로 승준에겐 몽롱한 판타지를 덧씌운다.

주제의식은 약하다. 당산나무와 재앙, 임신과 바다거북의 이야기는 연결고리가 부실하다. 그러나 "제가 돌보고 싶은 건 사람이에요"라는 학자의 말처럼, 박근형 연극다운 사람 냄새가 풍긴다. 《바다거북의 꿈》은 관념에 머물 때도 있지만 희극적인 감각과 현실 풍자, 배우들의 앙상블로 관객은 즐겁다. 골목길 연극에서 오랜만에 다시 뭉친 윤제문·고수희·주인영이 반갑다.

▶10월 4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02)6012-2845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