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클래식 애호가] [2] "음악인들의 기차역 같은 곳… 적자(赤字)지만 문 못닫아"

입력 : 2009.07.09 03:23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 대표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로 6년전 문열어 불황에도 강의실 늘리려 투자

서울 신사동 로데오 거리의 한복판에 클래식 음반 전문점을 세운다는 역(逆)발상으로 6년 전 문을 열었던 '풍월당'은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존 건물 4층의 음반점 외에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이름을 딴 음악 카페 '장미의 기사'와 100석·40석 규모의 음악 강의실 두 곳을 확충하느라 5층까지 임대해버렸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박종호(49) 풍월당 대표는 "원래 피부과가 있던 자리인데 이 불경기에 우리가 쫓아냈다. 몸 고치는 대신 마음을 고칠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며 웃었다.

2명으로 출발했던 직원도 10명으로 늘었다. 음반 시장의 위축을 염려하고, 클래식 공연의 불황을 걱정하는 시대에 역발상을 넘어 역주행이 아닐까. 그는 "개장 6년 만에 처음으로 기업처럼 실사를 받아보았는데 적자투성이였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만 수억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잘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그 생각을 버렸다"고 했다. 그런데도 음악 여행과 출판까지 박씨의 욕심은 도무지 끝이 없다. 역주행의 동력을 묻자, 그는 음반점을 '기차 역'에 비유했다.

"수많은 연주자와 강의 진행자, 애호가까지 모두 이 역을 거쳐갑니다. 입석까지 다 찰 때도 있지만 텅 빌 적도 있지요. 역장 노릇하기에 벅차고 버겁다고 역을 닫아버리면 이분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요."

클래식 음악의 불황기에 확장을 택한 음반점 풍월당의 박종호씨는“모두 쉽고 편한 길로 간다고 무작정 따라가선 안 된다. 누군가는 거꾸로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클래식 음악의 불황기에 확장을 택한 음반점 풍월당의 박종호씨는“모두 쉽고 편한 길로 간다고 무작정 따라가선 안 된다. 누군가는 거꾸로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1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박씨의 어릴 적 부산 집에는 75장짜리 '세계 명곡 대전집'이 있었다. 초등생 때부터 베토벤 교향곡 3·5·6·9번과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등 작곡가들의 대표곡 모음을 닳도록 들었다. 하지만 누나들이 시집갈 적마다 이 전집을 가져갔고, 초등생 막내의 항의에 어머니는 같은 모음집을 4번이나 사야 했다. 박씨는 "베토벤은 다른 곡이 없는 줄 알았지만, 이 전집 덕분에 음악 취향에서도 편식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LP 1장에 1100원 하던 고교생 시절에 용돈을 모아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처음 산 뒤에 '베토벤도 다른 곡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보다 못한 누나는 오이겐 요훔 지휘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9곡)을 선물했고, 방학이면 일어나자마자 전축으로 달려가 교향곡 9번까지 모두 들은 뒤에야 다른 일을 했다. "한때 이 세상의 모든 클래식 음반을 다 들으려 했다"는 그의 말은 절반의 경외감과 함께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박종호씨는 풍월당의 대표이자 강사로 활동하는 '감독 겸 선수'다. 그가 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시공사)은 30쇄 가까이 나간 스테디셀러이다. 박씨가 모아온 LP 5000여 장을 내놓은 지난달 바자회 때는 장당 1000원의 가격을 붙였다. 하지만 10만원까지 성금을 놓고 간 애호가도 있었고, 그동안 쌓았던 음반 적립금을 다시 기증한 고객도 있었다. 박씨는 "분별력 있고 진지한 애호가 층이 두터워져야 음악계도 건강해진다. 작은 문화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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