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카이스트 다니는 공학도, 카네기홀에서 연주한다

입력 : 2009.04.24 10:07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커뮤니티인 유튜브(www.youtube.co.kr)가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온라인 오디션을 열었다. 나이, 지역, 악기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오디션으로, 참가자는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감독인 탄 둔이 작곡한 ‘인터넷 심포니 에로이카’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한 동영상을 업 로드해 심사를 받았다. 심사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서울시립교향악단 등이 참여했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4000여 명이 참가한 이 오디션의 합격자는 90명. 그중 한국인이 8명이다. 이들은 4월 15일,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상임 지휘자인 마이클 토머스 지휘로 공연을 한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대, 독일 베를린 음대 졸업 등 화려한 경력의 한국인 합격자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김대식(19) 씨. 바이올린 연주로 이 프로젝트에 뽑힌 그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 다니는 공학도다. 어떻게 공학도가 전문 연주자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의문을 가지고 그와 만날 약속을 했다. 대전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외갓집에서 하루 머문다고 했다.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 그는 기숙사에서 막 뛰쳐나온 ‘학생’ 모습 그대로였다. 그저 음악이 좋아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을 뿐인데, 특이한 배경 때문에 주목받는 것 같아 민망하다고 했다. 말수도 극히 적었다. 동영상으로 본 바이올린 연주를 칭찬하자 “동영상이 잘 나왔다”고 했다. 공대생과 음악, 연결 짓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답 역시 간단했다.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 도중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타닥타닥 두드린다. “제가 집중을 잘 못해요.” 카이스트 학생이 집중력이 약하다니? 남들은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하루 종일 연습할 때, 그는 마음이 내킬 때만 바이올린을 켰다고 한다. 다섯 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던 그는 부산 과학영재고에 진학한 후에도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지금은 카이스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다. 집안에 음악하는 사람도 없고, 음대에 진학해 음악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았지만 음악은 그에게 기쁨과 행복, 쉼을 주는 존재였다. 바이올린 연주는 그에게 한 번도 스트레스가 된 적이 없다. 오히려 음악이 있었기에 공부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오디션에서 그는 지정곡인 ‘인터넷 심포니 에로이카’와 브람스의 ‘심포니 4번 1악장’을 연주했다. 브람스 곡은 작년 가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연주했던 곡이라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다. 동영상을 올리면서 ‘뽑히면 좋겠다’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그는 “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데 카네기홀에 선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라고 말했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음악적 천재성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함께 있던 그의 어머니는 “저 아이가 네 살 때, 두 살 위 누나가 바이올린 켜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배우겠다고 졸랐어요. 악보까지 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저 녀석이 그냥 폼을 잡는다고 생각했어요. 악보를 보며 바이올린 켜는 누나를 보고 그냥 흉내 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는 장난 삼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려주며 “들은 대로 악보를 그려 보라”고 했다. 아이가 무언가 끼적거려서 봤더니, 악기까지 구분해 정확하게 악보를 그려 놓은 게 아닌가. 악보 그리는 것을 배운 적이 없던 때였다. 그걸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얘, 태어나기 전부터 음악을 했었나 봐”라고 이야기했다.

음악과 수학은 통하는 게 많아요

그가 수학・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카이스트대에 입학한 것과 음악적 재능은 서로 연관관계가 있었다.

“음악 구조가 수학적인 기호로 되어 있잖아요. 박자도 그렇고. 일정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게 음악은 수학과 통하는 게 많아요.”

어릴 때는 규칙적인 리듬의 바흐 등 바로크음악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같이 낭만주의 작곡가의 음악이 좋다고 한다. 어릴 때는 머리로는 음악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손이 따라 주지 않아 연습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운동신경도 둔한 편이라고 한다.

“현악기는 특히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매일 고민했죠. 왜 나는 음반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지 못할까, 하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머리로 하는 연주를 손으로 옮기기 위해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비로소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 후 음악은 그에게 동반자가 되었다. 음악과 관련된 것이면 편식 없이 고루고루 맛봤다. 고등학교 때는 일렉트로닉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통기타도 열심히 배웠다.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 보고 싶어 부산 해운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홀로 연주하기도 했다. 조용해 보이지만,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라고 한다. 김대식 씨와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가 한마디했다.

“다 큰 애 인터뷰에 엄마가 따라온 게 우스운 일이라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얘가 너무 말이 없어서요. 제 말은 참고만 해 주세요.”

어머니 박순영(49) 씨의 교육 철학은 단순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뭘 꼭 해내라고 다그치지도, 공부를 강요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러다 김대식 씨가 과학영재고 시험을 봤을 때를 회상했다.

“시험 보기 전날, 얘가 너무 설렌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문제가 나올지 궁금하다고. 시험에 붙을까 떨어질까 초조해하기는커녕, 재미 삼아 시험 보는 애 같았어요. 시험을 본 후에는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 흥분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사교육을 시킨 적도 없는데,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들이 신기했다고 한다. 김대식 씨뿐 아니라 서울대에 진학한 누나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음악 때문에 가족 간 자잘한 기쁨과 추억거리가 쌓이면서 아이들이 사춘기를 무난히 넘긴 것 같다고 박순영 씨는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습할 때 따라가 들을 때도 많다.

“옆에서 듣기만 해도 정말 즐거워요. 듣는 사람도 그런데,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나 즐겁겠어요? 두 아이가 모두 세상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김씨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한 곡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연주해 온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음,  뭐로 할까요? 제가 요즘 시험 기간이라.”

인터뷰 내내 말없이 씩 웃기만 하던 그의 표정이 단숨에 진지하게 바뀐다. 그러고는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를 감미롭게 뽑아낸다. 연주가 끝나고 바이올린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그는  “내일 오전 수업이 있어 일찌감치 KTX를 타고 가야 한다”고 쑥스럽게 이야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계를 다루는 공학도인 그에게 음악은 언제나 행복을 안기는 동반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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