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0.14 11:29
●전시명: '다락: 기억·구름·신기루'●기간: 10. 13 ─ 11. 29●장소: 페리지갤러리(반포대로 18)

이예승은 VR, AR, 3D 프린터, AI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작업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 《다락: 기억·구름·신기루》에서 관객은 공간 입구에 놓인 실을 손에 쥐고 들어서 커튼으로 구획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인 ‘다락’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 있는 창고를 뜻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방학을 맞아 시골의 외갓집 혹은 먼 친척 집을 방문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미지의 장소 앞에서 호기심이 발동하고, 마침내 낯선 곳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모험이 주는 떨림과 두려움, 설렘과 같은 복잡한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현실의 장소로 돌아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경험은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작가에게 다락은 이러한 이동과 접촉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현실이자 비현실의 공간이며, 무언가 남겨진 비물질적 장소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 실체를 가진 현실은 가상의 세계와 지속적인 접촉을 하고 있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우리는 큰 세계의 끝자락만 더듬으며 넓고 깊은 시공간을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기억을 호출한다. 기억은 이미 지나가 버려 비현실이 된 것을 다시 현실의 실재로 불러오는 과정으로서, 머릿속 흐릿한 이미지를 명확한 장면으로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비물질적으로 존재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낯익은 형태, 색, 빛, 그림자, 냄새, 촉감과 기존 경험을 동시에 소환하는 일이다. 작가가 말하는 기억은 명확한 인식이 아니라 불명확하고 흐릿하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에 가깝다. 그는 커튼 뒤 설치물들을 통해 관객 각각의 잠재된 기억이 작업과 접촉하는 순간 새로운 인식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균형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와 성찰은 지금도 유효한 방식일까?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느끼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여기’와 ‘저기’의 사이뿐 아니라 시간적 거리도 포함된다. 우리가 작품을 본다는 것은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신기루는 외부의 자연현상을 외부의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내 사라져 허구임이 드러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존재했던 현상임이 틀림없으며, 신기루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어떤 정보든 즉시 전달되는 오늘날, 우리는 시간적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서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밀착된 시간은 우리에게서 숙고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뒤에는 그저 무엇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만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전시장은 물질의 존재 양태인 형태, 밀도, 움직임 외에도 빛, 색, 공기와 같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시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허상인 신기루를 현실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실재로 남겨놓기 위해 서로의 거리를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억, 구름, 신기루'의 다층적 상황은 현실이든 비현실이든 내가 지금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실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현실 속의 비현실인 전시장에서, 관객이 손에 쥔 얇고 가는 실은 내가 어떤 현실에 있음을 알려주는 도구로 작용한다. 지금의 감각과 관념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 현재의 관념과 감각이 접촉과 끊어짐을 반복하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관계를 드러낼 뿐이다. 일시적 경험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온전한 것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말하는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예승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공유 가능한 가상, 공유 불가능한 현실을 이어 나가며,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와 감촉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사유는 우리 손에 쥐어진 실처럼 어떤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금의 현실 혹은 비현실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며 계속해서 이 순간을 의심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