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9.18 13:44
작가 최병소, 향년 82세로 11일 작고

노트를 살 돈이 없어서 신문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소년이 있다. 소년은 독서신문에 흥미를 느껴 책보다 신문을 더 많이 보기도 했다. 소년의 세상은 신문 위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곧고 강하게 완성되고 있었다.
중앙대학교(당시 서라벌예술대학) 서양화과에 진학한 후에도 소년은 신문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1975년부터는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선을 반복해 그어가며 ‘신문 지우기’ 연작을 탄생시켰다. 초기 타블로이드판 신문 한 면에 해온 그의 작업은 길이 14m 신문 용지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1970년대 언론 통제의 시대에 왜곡된 언론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소년은 최병소가 됐다.
그리고 소년은 찬란했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최병소가 향년 82세로 11일 작고했다.


최병소는 국내 최초의 현대미술제인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1977년 도쿄 센트럴 미술관,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81년 브루클린 미술관과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등 주요 그룹전과 2012년 대구 미술관 그리고 2016년 프랑스 생떼띠엔 근현대 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최병소는 신문지 위에 연필과 볼펜으로 선을 긋고 또 그어 새까만 선들이 전면을 덮고 마찰에 의해 종이가 군데군데 찢어져서 물리적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 할 때까지 지속하는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신문지 위에 까맣게 칠해진 표면은 언뜻 보기에 모두가 같아 보였지만 작가의 창조적 의지에 의해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노동과 시간은 예술적 실천으로써, 작품 한 점 한 점 속에 축적되어 하찮은 일상적 대량 생산물에 유일한 가치를 부여하고 일시적인 것을 영원히 잡아두고자 했던 시도였다.

청년 최병소는 신문지, 연필, 볼펜은 물론이고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하찮게 여기는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체의 순수성,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의 위계를 전복하고자 했다. 최병소는 이젤과 캔버스란 틀을 벗어나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 따위를 소재로 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업하고자 했다.
이러한 행위는 기존의 이미지와 언어를 지우고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구축했으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완성했다. 기교를 거부한 그의 작업은 수행이 아닌 ‘매번 새로운 즐거움’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예술적 태도는 곧 작가 자신을 닮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을 보여줬다. 2025년 서울 우손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이 작가의 마지막 개인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