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미술(4) - 귀: 울림과 침묵 그리고 우주

입력 : 2025.07.07 16:30
귀의 해부학. /렉스톤
귀의 해부학. /렉스톤
 
인간의 귀는 크게 외이, 중이, 내이로 나뉜다. 외이는 우리 눈에 보이는 귓바퀴와 귓불 그리고 귓구멍으로 구성된 가장 바깥쪽 부분이다. 중이는 오목한 고막과 이소골(망치뼈, 모루뼈, 등자뼈)이 있는 가운데 부분이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내이는 와우(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 그리고 청신경이 있는 가장 안쪽 부분이다. 소리라는 울림은 가장 바깥쪽인 외이의 귓바퀴에 모여 가장 안쪽인 와우관으로 전달된다. 실제 달팽이 집 나선처럼 세 바퀴 말려 있는 약 3.5cm의 와우관은 물리적 울림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이를 제8번 뇌신경을 통해 대뇌 관자엽의 청각 피질로 전달한다. 우리는 이 힘의 전달을 ‘청력(聽力)’으로 정의하고, 이 물리적, 전기적 과정을 ‘듣는다’라고 표현한다.
 
인류의 진화는 시력에 온 힘을 쏟아붓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은 뇌신경에 직접 연결될 정도로 발달했지만, 귓바퀴를 움직일 수 있는 이개근은 거의 퇴화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청력은 여전히 좋은 편이다. 물론 개의 청력에 비하면 삼분의 일 수준이지만, 음악이라는 예술을 만들어낼 정도로 귀와 청각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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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반 고흐. /Courtauld Institute, London, (오른쪽)베토벤의 초상.
(왼쪽)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반 고흐. /Courtauld Institute, London, (오른쪽)베토벤의 초상.
 
‘귀’하면 떠오르는 두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와 루트비히 판 베토벤. 1888년. 화가는 자신의 외이를 자른다. 그리고 1889년 ‘별이 빛나는 밤’를 그리고 1890년 자살한다.1819년. 작곡가는 내이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그리고 1826년 후기 현악사중주를 완성하고 1827년 사망한다.보이는 귀를 자른 화가와 듣는 귀가 먹은 작곡가에게는 우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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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별이 빛나는 밤, 1889, 반 고흐. /MoMA, New York, (오른쪽 위)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M51a 나선 은하. /NASA,ESA, S.Beckwith, Hubble Heritage Team, (오른쪽 아래)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NGC1398 나선 은하. /NASA,ESA, Mark Hanson, Mike Selby
(왼쪽)별이 빛나는 밤, 1889, 반 고흐. /MoMA, New York, (오른쪽 위)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M51a 나선 은하. /NASA,ESA, S.Beckwith, Hubble Heritage Team, (오른쪽 아래)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NGC1398 나선 은하. /NASA,ESA, Mark Hanson, Mike Selby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유명한 명작이라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중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반쯤 미쳐있던 고흐는 미술사상 전무후무한 별 무리를 밤하늘에 그려 넣었는데, 그 모양이 나선 은하다. 고배율의 우주 망원경은 물론 전자 망원경도 없던 시절이었다. 자기 귀를 자른 광인 고흐는 소용돌이치는 은하를 맨눈으로 보았을까? 광활한 검은 밤에 총총히 박혀 있는 작고 밝은 점에서? 
 
(왼쪽)흰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반 고흐. /Van Gogh Museum, Amsterdam, (오른쪽)자화상, 1889, 반 고흐. /Musée d’Orsay
(왼쪽)흰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반 고흐. /Van Gogh Museum, Amsterdam, (오른쪽)자화상, 1889, 반 고흐. /Musée d’Orsay
 
고흐의 나선 우주는 밤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 자화상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1887년 겨울에 완성한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에서 배경의 소용돌이와 고흐의 옷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1889년 9월의 자화상에서 배경의 구불구불한 나선은 화가의 몸과 공명한다. 그렇게 은하의 중심에 고흐라는 별이 존재하게 된다.
 
(위)윌리엄 허셜의 망원경, 1789. /The University of Chicago Library, (아래)윌리엄 파슨스의 나선 은하 스케치, 1845. /www.lindahall.org/about/news/scientist-of-the-day/william-parsons
(위)윌리엄 허셜의 망원경, 1789. /The University of Chicago Library, (아래)윌리엄 파슨스의 나선 은하 스케치, 1845. /www.lindahall.org/about/news/scientist-of-the-day/william-parsons
 
압생트에 취한 미치광이 화가가 맨눈으로 은하를 봤을 리 만무하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지적 호기심이 넘쳤던 유럽 귀족들은 거대한 천체 망원경을 직접 제작해 현대 우주 망원경이 찍은 사진과 거의 흡사한 나선 형태 은하를 연필로 그려냈다. 우주와 별무리에 관심이 많았던 고흐는 이 천문학 서적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지구를 둘러싼 밤이 아닌 우주의 밤, 점 하나의 별이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휘몰아치는 은하를 캔버스에 담았다. 이렇게 ‘별이 빛나는 밤’은 ‘은하가 빛나는 우주의 밤’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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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악보 표지. /IMSLP, (오른쪽)멜로스 사중주단의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음반 표지. /Discogs
(왼쪽)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악보 표지. /IMSLP, (오른쪽)멜로스 사중주단의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음반 표지. /Discogs
 
1826년에 출판된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 - 현악사중주 12번부터 16번까지의 다섯 곡(op.127, op.130, op.131, op.132, op.135)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대(大)푸가(Grosse Fuge; op.133)는 작곡가의 내면을 울리는 불멸의 걸작들이다. 베토벤의 위대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병약해진 말년에 완성한 후기 현악사중주는 그 위대함에 심오함을 얹는다. 죽음의 목전, 속세의 평판 그리고 고답적 형식에 귀를 닫아버린 베토벤은 위대한 심연에서 완벽한 내적 자유를 노래한다. 그런데 끝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울림에서 우주가 들린다. 멈춘 듯 움직이는 활은 우주의 숭고한 침묵을 노래하고,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현은 마치 한껏 수축했다가 급격히 팽창한 우주의 울림과 맥놀이 한다. 특히,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15번 3악장과 푸가 형식인 14번 1악장과 대푸가를 들으면 신과 우주 그리고 별과 내가 하나 되는 신비로운 일체감을 경험할 수 있다. 200년 동안 수많은 음악 애호가와 음악 평론가가 베토벤이 만년에 얽어낸 ‘내면의 우주’에 공명하며 감동했다. 그리고 과학자들도 베토벤의 음악에서 심비한 우주를 찾아냈다.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Cosmos)의 2장 제목은 ‘우주 생명의 푸가’이며 3장 제목은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다. 또, 그는 먼 우주를 향해 항해할 보이저호에 음악을 싣자고 제안했는데, 수록곡 중 하나가 베토벤 현악 사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Cavatina)’다. 베토벤의 우주를 싣고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는 48년이 지난 현재 250억km 밖의 성간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대중 과학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저자이자 양자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어려운 물리학을 음악에 빗대어 설명한다. 그는 베토벤 후기 음악들에서 우주의 흔치 않은 아름다움과 시간의 신비한 원천을 찾아낸다. 귀 먹은 작곡가 베토벤이 울린 ‘내면의 우주’가 시간과 공간을 아득히 초월해 모두의 우주에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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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외이의 표면 해부학. /Stanford Medicine Otologic Surgery Atlas, (가운데)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M81 나선 은하. /NASA, (오른쪽)내이의 해부학 도식. /National Institute on Deafness and Other Communication Disorders
(왼쪽)외이의 표면 해부학. /Stanford Medicine Otologic Surgery Atlas, (가운데)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M81 나선 은하. /NASA, (오른쪽)내이의 해부학 도식. /National Institute on Deafness and Other Communication Disorders
 
바깥 귀를 자른 화가는 밖의 우주를 그렸고, 안쪽 귀가 먹은 작곡가는 안의 우주를 작곡했다. 우주는 왜곡된 시공간이다. 단칼에 잘린 고흐의 귀는 우주의 공간을 점유하고, 서서히 먹은 베토벤의 귀는 우주의 시간을 항해한다. 외이 귓바퀴의 해부학적 명칭은 Helix(나선)고, 내이 Cochlea(달팽이관)는 나선형으로 말려있다. 시각과 청각의 울림들 그리고 ‘나의 밖’과 ‘나의 안’이 나선 은하의 우주에서 만난다. 평행 우주도 있다. 어느 우주에서는 귀먹은 고흐와 귀를 자른 베토벤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고흐는 내면으로 침잠하는 음악이 되고, 베토벤은 별이 빛나는 그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무한한 상상이다. 두 예술가는 그 지난했던 삶 때문에 불굴의 의지와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삶의 끝에서 게워 낸 작품에 극복과 승리 따위를 빗대는 건 비루하다. 반 고흐와 베토벤의 잃어버린 귀는 잘리지도, 먹지도 않은 귀를 가진 우리에게 밖과 안을 초월한 고양감을 선사한다. 이것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판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가 인간이자 곧 우주인 우리를 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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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자화상, 1815/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 Madrid
고야, 자화상, 1815/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 Madrid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귀도 반 고흐와 베토벤의 우주에 공명한다. 베토벤과 고야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내이에 문제가 생겨 청력을 상실했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때문에 많은 구설에 올랐다. 평민 출신으로 민중을 깨우치는 계몽과 혁명의 예술가였지만, 귀족처럼 보이고 싶어 이름에 van과 de를 넣고 자신을 후원하는 왕실과 귀족과도 잘 지냈다. 무엇보다도 음악사와 미술사에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며 한 시대의 예술을 집대성한 후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업적이 크다. 하지만, 우리가 고야와 베토벤을 다른 경지의 예술가로 추앙하는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속세와 예술사조를 초월하는 최후의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환시(Asmodea),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환시(Asmodea),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운명의 세 여신,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운명의 세 여신,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병환과 청력 상실로 쇠약해진 고야는 스페인 만사나레스 강의 한적한 외곽에 집 한 채를 구해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이라 이름을 붙이고 칩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베토벤의 마지막 몇 해처럼 자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으로 탐험을 떠난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그곳은 온전한 자아이자 무한한 우주였을 것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베토벤이 침상에 누워 마지막 현악 사중주를 남긴 것처럼 고야는 ‘귀머거리의 집’ 벽에 14점의 그림을 남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자신만을 위한 그림. 위의 ‘검은 그림’ 연작이다.
 
고야, 개,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고야, 개, 1820~1823. /Museo Nacional del Prado
 
검은 그림 연작 중 가장 주목할 작품은 ‘개(El Perro)’다. 득도한 동양화처럼 여백이 거대한 벽(131.5cmx79.3cm)을 가득 채운다. 왼쪽 아래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개가 늪에 있는지, 모래 구덩이에 있는지, 아래로 가라앉는 중인지, 위로 올라오는 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림을 가만히 보다 보면 우리의 인식이 내면으로 가라앉고 그곳으로부터 관조와 철학이 무한히 상승하기 때문이다. 빛인지 그림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 그리고 물체인지 무형인지 모를 공간에서 시간은 미지수로 처리된다. 이곳은 고야의 우주다. 질문이 쏟아진다. 오른쪽 위의 검은 원은 무엇일까? 더는 울림이 들어오지 않을 고야의 공허한 귓구멍일까? 아니면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할 수 없는 우주일까? 왜 하필 개일까? 흔하고 하찮은 미물. 청력이 좋지만 시력이 약한 개. 그렇다면, 무한할 거 같은 저 노란 여백은 색이 아닌 울림이었을까? 혹시 저 늘어진 귀의 개도 청력을 상실한 게 아닐까? 후대 예술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시각의 시(詩)’라 칭송하면서 최초의 ‘상징주의 그림’이라고 화가를 치켜세웠다. 약하다. 고야의 ‘개’는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는 물론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 표현주의까지 관통한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갇힌 채로 우주의 별이 된 우주견 ‘라이카(LAIKA)’처럼, 고야의 개는 지금도 수많은 화가의 우주에서 침묵과 울림으로 반짝이고 있다. 
 
(왼쪽 위)터너, 스태파, 핑갈의 동굴, 1832.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왼쪽 아래)모네, 서리 내린 일몰의 건초더미, 1891. /위키페인팅, (오른쪽)르동, 환영, 1905.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왼쪽 위)터너, 스태파, 핑갈의 동굴, 1832.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왼쪽 아래)모네, 서리 내린 일몰의 건초더미, 1891. /위키페인팅, (오른쪽)르동, 환영, 1905.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왼쪽)뭉크, 절규, 1893. /Munch Museum, (가운데)데 키리코, 거리의 미스테리와 멜랑콜리, 1914. /위키아트, (오른쪽)로스코, 오렌지와 노랑, 1956. /buffaloakg
(왼쪽)뭉크, 절규, 1893. /Munch Museum, (가운데)데 키리코, 거리의 미스테리와 멜랑콜리, 1914. /위키아트, (오른쪽)로스코, 오렌지와 노랑, 1956. /buffaloakg
 
우주는 하나가 아니다. 무한하다. 한 사람의 우주는 다른 사람의 우주와 같을 수 없다. 고로 우리는 고야의 우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소리가 없는 우주에선 모두가 귀머거리다. 인간도, 개도.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 총체극단 '여집합' 단장.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기획 및 연출을, 여러 극단에서 극작과 연출을 맡고 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철학으로 유리알 유희를 하며 여러 유형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클락헨'(2020), 기록문학 '그 의사의 코로나'(2022), 소설 '악의 유전학'(2023)을 출간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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