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4.29 16:53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7월 20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

전시장에 열두 개의 이야기가 메주, 블루스, 소년과 소녀로 탈바꿈한다. 이 낯설고도 생경한 조합에 관람객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서며, 이내 ‘엉망진창’ 블루스가 귀를 사로잡는다.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에서 들려오는 블루스 음악은 보스턴, 서울 등 각기 다른 곳에 있는 콘트라베이스, 보컬, 색소폰, 오르간, 드럼 다섯 명의 연주자가 합의되지 않은 자신만의 소리로 협주한다.
작가 정연두는 이에 대해 “전시장의 블루스 음악은 12마디로 이뤄져 있는데, 12마디마다 한 개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음악은 합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긋나 있죠. 현실의 어려움도 유머로 승화하는 블루스 음악에 이끌려 작업하게 됐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연주하면서도 함께 공존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시장 벽면의 메주 이미지 역시 총 12개로, “발효의 얼굴”을 촬영했다고 말하는 정연두는 “모든 존재가 죽고 썩어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체감할 때면 슬픈데, 발효는 존재의 쓰임이 끝난 뒤에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이거나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라고 말했다.

미생물의 작용은 우주의 창조로도 확장된다. 오르간과 피아노가 연주되는 동안 퍼커셔니스트는 음악에 맞춰 밀가루를 흩뿌리며 우주를 연상시키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창조의 몸짓 곁에는 은하와 성운처럼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는 옆에 자리한 영상이 설명하듯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밀가루를 검은 대리석 위에 털어내 만든 이미지다. 소망하고 축하하듯 두 손을 비비고 박수를 치며 광활한 우주를 만들어냈지만, 이를 이룬 물질은 알고 보면 밀가루라는, 가벼움과 무거움, 장난기와 엄숙함을 뒤섞는 작가 특유의 역설적 화법이 돋보인다.



정연두는 영상,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이질적인 대상을 횡단하며 시대의 틈을 드러내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7월 20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블루스 음악과 발효의 리듬을 교차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살아내는 유머와 염원의 태도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