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0.24 16:07
전시장서 해외 미술 작가가 설명하는 작품 세계 ‘우리말’로 통역
큐레이팅, 통·번역, 평론,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최근에는 고도화된 한국 미술계의 영향으로 해외 기반 작가가 한국에 방문해 전시를 선보이는 일이 잦아졌다. 작가는 여러 관람객, 혹은 기자를 전시장에서 만나며 자신의 작업 과정과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술 전문 통역가가 함께한다. 보통 작가는 자신의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미술 세계를 언어로 옮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상적인 언어가 아닐뿐더러 낯설고 복잡한 예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런 작가의 말을 외국어로 듣고 통역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상당한 능력을 요구한다. 미술과 작가, 그리고 언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선행돼야 하며, 동시에 통역에 관한 언어적 감각이 필요하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서울 아트위크 기간, 여러 해외 작가의 전시를 취재할 때마다 옆에서 능수능란하게 말을 전하는 통역가에게 시선이 갔다. 작가 본인도 한 번 뱉은 단어를 여러 번 고치고 고민하며 말을 이어가는데, 오히려 통역가는 막힘없이 편안하게 의미를 살려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던 중, 최근 한국어로 쓰인 작가 한강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한글날 바로 다음 날인 10월 10일에. 당연히 한국문학 역사에 남을 작품을 써낸 작가 한강에게 관심이 쏠렸지만, 한강만의 서정적이고 감수성 짙은 문체를 그대로 살려 번역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도 함께 조명받았다. 이는 어쩌면 ‘낯선 언어’나 ‘비주류 언어’로만 여겨지던 한국어의 가능성에 대한 조명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본지는 미술계 최전선에서 큐레이팅·통역·번역·평론 등 전방위적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전하는 통역가 박재용과 10월 한글날 기획특집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서울 아트위크 기간동안 박재용은 페로탕 등 여러 갤러리에서 활약하며 한마디로 빠지는 곳 없이 종횡무진 ‘통’했다.

―그간 해외 작가의 전시장에 가면 선생님을 자주 뵀던 것 같습니다. 미술 관련 업무를 다양하게 소화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것 같아요. 통역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90년대에 서울 인사동 갓길이 아직 포장이 덜 된 때였는데요.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길 주차장 쪽에 주말이면 좌판이 깔리곤 했어요. 그때, 자릿세를 내지 않고 물건을 팔려고 하는 어떤 미국인 아저씨가 자릿세를 내야 한다고 하는 상인회 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마 제가 한 첫 통역이었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이 되어 인터넷을 접하고서는 자막을 만드는 걸 취미로 삼았습니다. 이후 처음 돈을 받고 번역을 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에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어요. 제 전공 중 하나가 영어영문학이었는데, 학교 대외홍보처에서 매달 만드는 학교 소식지 번역을 할 ‘근로장학생’이 필요했거든요. 미술 관련한 번역은 2009년에 아트선재센터를 위해 짧은 글 하나를 번역하면서 시작했어요. 그걸 보고 당시 큐레이터님 이 한 번 놀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거기서 일을 하게 됐죠. 미술 통역은 제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큐레이터로 일할 때 시작했어요. 통역가 선생님을 부를 수 없어 우연히 제가 몇 번 하게 되었는데, 다른 미술관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저를 찾기 시작했어요. “재용씨, 주말에 아르바이트 하나 해” 했던 게 점점 “재용씨, 하루 월차 내고 와서 도와줄 수 있어?”로 바뀌기 시작했죠.
―전시장에서 해외 작가의 말을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데엔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단순 사실전달이 아니고 추상적인 미술 세계의 언어를 전해야 하니까요. 미술 작가의 말을 통역하는 것은 기존 통역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미술을 다루는 언어는 마치 ‘외국어의 외국어’ 같은 거라고 봐요. 작가들은 세상을 조금 다른 논리로 보거든요. 그러니, 작가의 ‘언어적 모국어’만 알아선 통역하거나 번역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닌 경우도 많고요. 그럴 땐 ‘이탈리아어로 생각하는 게 편한 사람이 하는 영어’ 혹은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를 경유한 영어를 이해할 수 있는 감각도 필요하죠. 한국어나 영어 말고도 아랍어, 라틴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고 있고 어설프게나마 구사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작가의 말 역시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문자로 옮긴 거라는 점이에요. 그러니 작가의 작품이나 예술 세계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걸 모른 채 통역을 하는 건 눈을 가린 채 음식을 평가하는 '흑백요리사' 심사위원보다 더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해요!(웃음)
―영어는 한국어와 많이 달라 전시장에서 작가의 열정이 담긴 언어를 ‘말맛’을 살려 통역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미술 작가의 언어를 통역하면서 한글 자체의 매력을 살리는 본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가장 재미있는 건 한국어가 ‘고립어’라는 점입니다. 영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해서, 한국어와는 어순이 전혀 다르거든요. 그러니 ‘말맛’을 살리는 건 모든 통·번역가들에게 그렇듯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저는 통·번역가이기도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로 국내외 매체에 글을 쓰기도 해요.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는 작가나 큐레이터의 말을 좀 더 한국어에 걸맞게 옮길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어로 쓰인 글, 한국어로 하는 말을 많이 읽고 들으려 노력합니다. 잘 쓴 글을 읽거나, 다양한 사람이 말하는 다양한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이 도움이 되죠. 내가 쓴다면 어떻게 고쳐서 쓸까? 나라면 어떤 문장으로 말할까? 공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저도 갤러리의 기자 간담회에서 재용 선생님을 처음 만난 뒤에 했던 생각이, 정말로 즉석에서 말을 듣고 통역해 주는 걸까? 아니면 사전에 작가와 논의를 나눈 내용을 토대로 통역을 하는 걸까? 라는 거였습니다.(웃음) 어떤가요? 사전에 논의한 부분이 있나요?
대부분의 경우는 사전에 논의랄 게 많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전시 기자 간담회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보도자료나 작품 목록을 미리 받을 수는 있죠. 하지만 작가분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전혀 모르는 채 통역을 할 때가 많아요. 행사 당일에 작가분을 조금 일찍 만나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반드시 정확히 전달해야 할 개념이나 용어가 있는지는 물론 확인하지만요. 그러니 통역가로서 해야 할 숙제는 통역할 대상이 뭘 알려주지 않더라도 미리 다 알고 가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미술에 관한 통역을 하려면 작가에 대한 공부도 병행돼야 할 텐데요. 즐겁고도 지난한 과정일 것 같습니다. 통역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만약 미술관이나 갤러리 측에 보도자료 말고도 요청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다 요청합니다. 출간된 도록이나 작가에 관한 기사, 평론 같은 것들이에요. 가장 큰 도움이 될 때는 동영상 플랫폼에 작가가 했던 아티스트 토크나 대담 기록 영상이 있는 경우입니다. 작가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영국식 영어인지, 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뒤 영어를 익힌 사람의 영어인지 등), 어떤 호흡으로 말을 하는지,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전시장에서 다양한 작가를 만났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일화나 작가가 있나요?
미술 작가는 아니지만, 미술 전시에 초청받은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을 통역한 적이 있어요. 시간은 두어 시간 정도, 주제는 ‘21세기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다’는 강연이었는데, 아무런 사전 자료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로 순차 통역을 했어요. 역시나 다행인 건, 제가 대학교 학부에서 세 가지 전공을 하며 배운 내용으로 이론이나 철학 관련된 복잡한 어휘들을 무사히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던 건 몇 년 뒤 지젝이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또 제가 통역을 하게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 맞춰 강연이 마련되었거든요. 자료를 주지 않는 연사로 악명이 높았는지, 주최 측에서 미리 강연노트를 보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나봐요. 그런데 저를 보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오, 또 당신이군요! 사실 제가 보낸 원고는 주최 측에서 하도 귀찮게 해서 아무거나 보낸 거랍니다.” 이때도 두 시간 강연이었거든요. 그런데 지젝씨가 A4 용지를 여러 장 가져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가방에서 온갖 메모를 적은 쪽지 뭉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테이프로 A4 용지에 메모들을 얼기설기 붙이더니 이랬어요. “이게 오늘 내 강연 원고가 됩니다. 복사를 해서 참고하세요.” 역시나 그날 통역도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또, 기획을 하고, 전시 서문을 직접 쓰고, 책까지 번역하고 계십니다. 마침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근에는 번역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통·번역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통·번역의 매력은 ‘짜릿함’ 입니다. 통·번역에는 ‘출발어’와 ‘도착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출발어’로 작성되거나 발화된 표현이나 생각을 내가 구사하는 ‘도착어’로 다시 만드는 걸 말하는 거예요.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요. 복잡한 개념이나 표현이 그걸 통역하거나 번역하는 나를 통과해서 다른 언어로 변환된 다음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게 착착 맞아떨어지는 형태로 변신할 때. 그럴 땐 정말로 ‘전율을 느낀다’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감정을 느껴요. 거대언어모델(LLM)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 점점 더 고도화되면서 번역과 통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건 인간이거든요. 만약 챗 지피티(Chat GPT)를 써서 어떤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긴다고 해도, 누구에게 그걸 맡기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거랍니다. 통역과 번역은 각각 자기만의 매력이 있기도 해요. 통역은 마치 공연을 하듯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흡과 긴장감이 있고, 번역은 마치 프리다이빙을 하거나 마라톤을 뛰듯이 긴 호흡으로 일하는 매력이 있죠.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또는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품 경향은 무엇인가요?
저는 좋은 통역이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균형을 잡아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없지만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품 경향은 있어요. 저는 우리가 모든 게 ‘고해상도를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선명한 화면, 너무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서사, 너무 명확하게 정답을 주는 작품 해석 같은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 ‘저해상도’를 피난처 삼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분명히 잘 그릴 수 있는데 일부러 못 그린 것 같은 그림이나, 엄청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데 삐뚤빼뚤하게 만든 도자기 같은 것 말이에요.

―스스로 생각할 때 10년 뒤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워낙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데 최종 목적지가 궁금해집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들(통역, 번역, 전시 만들기, 글쓰기, 서재 운영, 학교 만들기,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 육아, 매일 달리기 등)이 다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거의 모든 일이 다 재미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10년 뒤에도 계속해서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제 막 40대가 되었는데, 통역과 번역은 60대가 되어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고요. 그래도 정확히 ‘10년 뒤’에 해당하는 걸 하나 말해보자면, 제가 요즘에 동료들과 함께 ‘큐레이팅 스쿨 서울’이라는 학교를 만들고 있거든요. 우리의 목표 중 하나가 ‘일단 10년은 해보자’입니다. 최근 사랑스러운 딸이 생기면서는 ‘지금부터는 일을 시작할 때 적어도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은 것만 하자’는 일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는 영어로 기고를 더 열심히 해보려 노력 중이니, 10년 뒤엔 영어로도 글을 더 많이 쓰는 필자가 되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미’입니다. 일단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와중에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한편, 박재용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 통·번역가, 평론가,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에서 2009년에 개최된 "플랫폼 인 기무사"(기획: 김선정) 전시를 시작으로 미술계에 입문했다. 이후 미디어시티서울(2010, 서울시립미술관) 프로젝트 매니저, 주한영국문화원 아트팀(2011-2012),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준비팀 연구원(2013), 일민미술관 큐레이터(2013-2014), 제5회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5, 2016-2017)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2016년 현대미술과 이론 서가 '서울리딩룸'을 설립해 운영중이고, '큐레이팅 스쿨 서울'(2013, 2024-)를 공동 설립, 운영 중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 조형예술과, 한국종합예술대학 미술원 등에서 강의했다. 큐레이터 및 프로듀서 등으로 참여한 주요 전시로 "토탈리콜"(일민미술관, 2013), 임민욱 개인전 "United Paradox"(프랑크푸르트 Portikus, 2015) 등이 있다.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동료들과 '서촌코미디클럽'을 운영중이며, 현재 영국 미술잡지 "frieze"의 컨트리뷰팅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