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0.11 16:42
별과 별을 선으로 잇자… 존재가 빛난다
한국 최초 영국 경매사 본햄스 초청 작가 혜명 김성희
인간의 지향과 이상 표현한 작품 30여 점 선봬
10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ACS(아트조선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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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색 한지 위, 형형색색 별이 찬란하게 빛난다. 각자의 빛을 뿜는 것만 같던 별 위로 거칠고 검은 선이 지나간다. 이내, 서로 연결되며 별자리로 거듭난다. 별자리는 별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자아낸다. 예로부터 인간은 밤하늘을 보며 별들을 잇고, 그림을 연상하며 자신의 꿈과 미래를 담아내고는 했다. 별자리는 가장 기본적인 회화 요소인 점과 선으로만 이뤄진 형태로, 그 자체로의 조형성을 뽐낸다. 작가 혜명 김성희의 화면에는 별의 탄생과 죽음, 자기 존재를 위해 열렬히 타오르는 빛, 세상 모든 존재의 욕망과 기억이 담겨있다.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이기도 한 혜명의 개인전 ‘별을 잇다’가 10월 15일부터 11월 2일까지 ACS(아트조선스페이스)와 디지털 문화공간으로 유명한 파리의 ArtVerse에서 동시에 열린다. ACS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별 난 이야기’ 연작을 비롯한 근작 30여 점이 내걸린다. 특히 꽃과 색을 이용한 신작은 작가가 지나온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가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전시 제목인 ‘별을 잇다’는 점도, 면도 가질 수 없는 선만의 ‘방향성’을 강조한다. 선은 한국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는 필법으로 완전해진다. ‘긋는다’는 행위는 시간성을 품고 있는데, 작가는 완벽하게 정돈된 선을 그어내기보다는 ‘긋는 시간’동안 자신이 겪은 감정과 의식을 모두 반영해 자연스러운 형태로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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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혜명은 수묵선을 통해 인간의 염원을 드러내고 생명성이 부여된 하늘의 별로 무수히 많은 기억과 의식의 지향을 표현한다. 마냥 아름다운 것만도 아닌, 그렇다고 치열하기만 한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우리 존재 모두를 대변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과 그 안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께서는 파리에서의 개인전과 함께 10월 15일부터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가집니다. 이번 전시를 앞둔 소감은 어떠신가요? 또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CS(아트조선스페이스)의 전신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시한 이후 6년 만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ACS 역시 변화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간이 큰 공간과 2층의 작은 공간으로 나눠진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따라서 저 역시 크기가 큰 대작과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게 됐고요. 공간에 맞는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했습니다. 또, 저번 전시에서 좀 더 나아가서 별들을 크고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작년에는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경매사 본햄스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지셨죠. 영국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저도 처음엔 참 놀랐습니다. 2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경매사에서 저를 초청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본햄스와 알고 지내던 컬렉터가 먼저 제 작품을 보여주고, 그걸 보고 본햄스에서 초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해외 기반의 작가는 아니고 한국의 전통적인 매체와 기법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인데, 배경과 상관없이 오직 미술만으로 글로벌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본햄스에서 개인전을 하게 됐는데, 튀르키예 태생의 할머니께서 아침마다 출근하듯이 전시장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제 작품을 물끄러미 보고 가시고 그렇게 여러 번 방문하셨는데, 어느 날은 작품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언어나 국적을 넘어서 제가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도 힘이 됐습니다. ‘내가 하는 작업의 방향성을 더 확실하게 밀고 나아가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는 전작에 비해 훨씬 과감하게 많은 시도를 한 점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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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별과 별을 잇는 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렬한 이 선은 선생님의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별자리는 저마다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히 한 자리에 존재하는 별은 없습니다. 저마다 탄생과 죽음, 에너지가 있어요. 거기에 스토리를 가지게 되면 별자리가 되는 것이고요. 스토리는 꿈, 이상, 지향, 욕망입니다. 별자리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별과 스토리를 더해 인간의 지향을 투영시킨 결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선을 그어 별자리를 완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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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별자리 중에서도 목동자리나 쟁기꾼자리라고 불리는 뵈테(Bὁὁtes)가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별자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우선 뵈테는 뭔가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 나가는 점에서 현대인의 삶과 정말 닮아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 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제 대형작품을 보면, 별이 무작위로 배치된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별자리 뵈테가 수없이 이어져 붙어 있는 형상입니다.
제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관람객분들께서 뵈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우주의 구성원이고, 빛나는 존재들이니까요. 별도 마찬가지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이 있고 찬란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별 난 이야기’ 연작 역시 별자리가 인간의 머리 안에 있는 형상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표현 요소는 무엇인가요?
우선 ‘별 난 이야기’는 존재의 형성에 대한 작품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올해 여름엔 참 더웠는데, 매미가 정말 강렬하게 울더라고요. 매미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는 왜 이런 형태로 존재하고,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향점이 있고, 방향성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그걸 별과 선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인간이 기억을 떠올릴 때 머릿속을 의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뉴런과 시냅스는 별자리와 닮아있습니다. 전기적 신호가 머리 곳곳을 오가며 기억을 전달합니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꿈꾸고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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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별 난 이야기’ 작품 속 귀걸이가 돋보입니다. 금색으로 덧 입혀져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표현 하고자 한 의미에 대해 말해주세요.
고대부터 왕족이나 귀족은 금으로 된 장식품을 많이 착용했습니다. 금은 어떤 가치를 상징하는 건데요, 영원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금의 가치가 영원하다고 믿지만, 사실은 유한한 삶에서 밖에 누릴 수 없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원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가졌기 때문에 금색 귀걸이가 물음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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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작에서는 꽃과 색의 활용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꽃은 선생님께서 직접 보고 경험한 꽃을 화면에 담아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최근의 변화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제 작업 한편에서는 현상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꽃을 포착해 구체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며 경험한 현상적인 세계에 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으로 관찰한 세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앞서 말한 매미나 생명체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데요. 아주 작은 풀꽃이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꽃은 뚜렷한 주인공이 없고 모든 꽃이 다 주인공처럼 여겨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특히 꽃은 한순간 짧게 폈다가 사라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폈을 때의 아름다움은 오래 남습니다. 그 순간순간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색과 꽃으로 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