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24 20:34
WWNN
스페이스 카다로그
CDA 갤러리
몇 년 사이 미술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한때는 많은 사람이 유입되며 과열 양상도 보였지만 현재는 다시 잠잠해진 듯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관계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또 급변하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아트조선>은 문 연 지 5년 이내 갤러리 5곳을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시리즈 두 편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대정신
얼마 전부터 정체불명의 3D 그래픽 사마귀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의미나 상징은 몰라도 꽤나 감각적으로 보이는 비주얼에 시선을 뺏긴다. 호기심에 피드를 클릭해 보면 전시 정보가 나온다. WWNN이다. 생겨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공간인 WWNN은 얼마나 좋은 작가인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설득’하기보다는 세련된 비주얼과 브랜딩으로 작품을 소개하며 감각적으로 ‘납득’시킨다. 이를 통해 짧은 시간에 그들의 이름을 효과적으로 알리며 새로운 트렌드와 공간을 찾는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의 ‘레이더’에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기반에는 ‘시대정신’이 있다. 이날 만난 오주현 WWNN 디렉터는 “WWNN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에 주목하며 전시를 선보입니다. 그런 부분을 ‘시대정신’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미술이 변화에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고, 그 문화를 바깥으로 표출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각기 다른 세대가 가지는 다른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또, 그 관점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어떠한 담론을 형성해야 하는지 WWNN을 통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공간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밝혔다.

WWNN는 개관전을 포스트 휴머니즘 주제로 1부와 2부로 나눠 선보였었다. 오주현 디렉터는 포스트 휴머니즘에 대해 얘기하려면 요즘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관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역시 ‘시대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젊은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는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전시 ‘The Vanishing horizon’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디스토피아 아닐까’라는 질문을 토대로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발생하는 여러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 작품을 통해 고민하고자 기획했다. 현재 진행 중인 2부의 작가는 강철규, 이정근, 임희재, Doooo(Masataka Shishido) 4인이 참여한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WWNN은 ‘What we need now’의 약자다. 직역하자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뜻이다. 오주현 디렉터는 작가로도 활동 중인 이정우 디렉터와 함께 이 공간을 설립했다. 미술이 미술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닌, 더욱 새롭고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보여주며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되길 원하는 바람을 담았다. 최근 참신한 전시를 연이어 선보이며 미술계 관계자는 물론, 집에 하나쯤 걸어놓고 싶은 유니크한 작품까지 내걸어 많은 컬렉터의 이목을 끈 WWNN. 변화무쌍한 이곳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자신 있다”고 답했다.

상생
스페이스 카다로그는 하나의 우주다. 미술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서로를 비춘다. 조형준 스페이스 카다로그 대표는 여러 해 동안 미술 일을 하며 많은 작가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의 경제활동이나 전시 공간을 구하는 부분에서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작가의 삶과 작업을 지속시키고 함께 나아가고자 카페 카다로그를 먼저 열게 됐다. 카페 카다로그는 스페이스 카다로그 맞은편 건물에 위치해 있는데, 예술가가 직접 구상한 스페셜 메뉴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메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시 도록을 비치하고 그릇이나 가구까지 작가의 손길이 닿은 제품으로 선정하는 등 매장을 찾은 손님에게 다각도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의도한다. 또한, 카페 직원까지 모두 주변 예술가들로 꾸려졌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산다.



전시 공간인 스페이스 카다로그는 을지로 조명 상가가 줄지어 들어선 골목 건물 3층에 위치해 있다. 몇 해 전부터 을지로는 개성 있는 상점과 식당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젊은 사람들의 장소로 거듭났다. 때문에 소품샵을 구경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맛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스페이스 카다로그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스페이스 카다로그는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예술을 건넨다.


스페이스 카다로그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전시를 꾸린다. 현재 진행 중인 고니, 이한빈, 박광수의 ‘손금 너머 선’ 전시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원초적 그리기로 동시대인의 군상을 표현해 온 작가 3인을 조명한다. 전시장의 유리문, 모서리, 창틀, 바닥까지 작품으로 변모한다. 또한 외부 기획자와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더욱 다채로운 전시를 연다. 그래서인지 3주 기준 1000명이 훌쩍 넘는 관람객이 방문한 전시도 있다. 대형 전시 공간이 아님에도 많은 관람객을 동원한 편. 조형준 대표는 “예술의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서 전시한 작가를 기억해 주고,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에 문득 지나치다가도 ‘어 저거 내가 봤던 건데’하면서 기억에 남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에너지
성수역에서 출구를 통해 위로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건물 2층에 위치한 CDA 갤러리는 ‘성수 핫플’ 중심에 있다. 성수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나온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 다양한 팝업스토어가 가득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창작, 발견, 감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CDA 갤러리는 참신한 시각으로 젊은 작가를 소개해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공간에서 만난 문현철 CDA 갤러리 대표가 건넨 명함에는 이름 앞에 ‘전시왕’이라고 쓰여 있었다. 명함의 독특함은 둘째치고라도, 함께 대화하며 미술을 대하는 태도와 공간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에서 열정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문현철 대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프라인 경험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작품의 생생한 실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갤러리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비교적 작은 지하 공간에서 시작해 점차 확장하며 성수역과 맞닿은 신식 건물에까지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어떻게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미술도 좋아했지만 전시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좋은 전시를, 재미있는 전시를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덕분에 그걸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CDA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참여한 아트부산 2024에서는 전속 작가인 백두리의 작품을 모두 판매했다.

또한, CDA 갤러리는 CDA와 CDA ZERO로 전시공간을 두 곳으로 나눠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둘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문현철 대표는 “CDA는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갤러리를 운영하며 작가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컬렉터에게 좋은 작품을 제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CDA ZERO는 보다 실험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모든 기준을 벗고 제가 소개하고 싶은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라며 두 공간에 대해 설명했다.

급변하는 미술시장에 대한 질문에는 “사실 제가 갤러리를 열었을 때는 사람들이 말하는 ‘미술시장 호황기’의 끄트머리였거든요. 사실 그 호황을 많이 누리진 못했습니다(웃음). 지금은 확실히 불황인데요. 타겟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저희는 그렇게 높은 가격대의 몇천, 몇억 대 작품을 판매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거래하는 작품은 몇백만 원 대의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정말 투자 목적이나, 큰손 컬렉터보다는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작은 그림 하나를 구매하거나, 계속 생각날 정도로 작품 하나에 반해 갤러리를 찾아오시는 애호가적 성격을 가진 분들이 많죠”라고 말하며, “좋아서 사는 그림은 경기를 안 타요”라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 CDA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5년 안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그야말로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