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의 흥얼거림: 입체적 회화가 빛깔 될 때

입력 : 2024.05.03 14:08

김홍주·나비드 누르·디아나 체플라누·이영림 그룹전 ‘The Humming of Colors’
‘나비드 누르’·‘이영림’
5월 10일부터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전시 ‘The Humming of Colors’를 앞두고 참여 작가 4인 중 2인을 묶어 2편에 걸쳐 다룬다. 이번 기사에서는 나비드 누르와 이영림을 소개한다.
 
이영림, ‘Mutuals’ 설치 전경. /작가 제공
이영림, ‘Mutuals’ 설치 전경. /작가 제공
 
전시장의 작품은 어떤 기준에 의해 벽에 내걸리는 걸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 중에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전시장 흰 벽에 걸린 회화가 단순히 ‘평면 그림’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회화 작품은 3차원 공간에 내걸리며 관람객과 상호작용한다. 또한 픽셀로 이뤄진 디지털 이미지와는 다르게 물감을 쌓아 올리고 캔버스 위로 붓질을 내지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물질적’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작품은 관람객이 보는 위치에 따라 색감과 질감이 달라지며 입체적인 감상을 가능케 한다.
 
색을 주제로 김홍주(79)·나비드 누르(Navid Nuur·48)·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67)·이영림(55) 4인의 전시 ‘The Humming of Colors’가 5월 10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 타이틀은 색과 색이 만나 조응하는 감각에 주목하고 시각적, 지각적 개념을 물질화하는 색에 대해 탐구한다. 세필, 마블링, 자연, 공간과의 상호작용까지. 제각기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네 명의 작가가 표현하는 ‘색의 허밍’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작품이 내걸린다.
 
이영림 작가 작업실 전경. /아트조선
이영림 작가 작업실 전경. /아트조선
나비드 누르 작가 작업실 전경. /아트조선
나비드 누르 작가 작업실 전경. /아트조선
 
특히 나비드와 이영림은 회화가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며 자신만의 입체적 회화로 ‘공간을 채색’한다. 나비드는 캔버스 옆면을 형광색으로 칠해 흰 벽에 걸렸을 때 작품을 감싸는 빛이 다채롭게 반사되도록 한다. 이영림은 비정형 평면 패널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며 공간 전체를 작품처럼 활용한다. 전시를 앞두고 작가 4인 중 나비드는 서면으로, 이영림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업실에서 인터뷰 하는 이영림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작업실에서 인터뷰 하는 이영림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나비드 누르(Navid Nuur) 작가의 모습.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Navid Nuur) 작가의 모습. /작가 제공
 
─아트조선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The Humming of Colors’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시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이영림 처음 전시 기획을 듣고, 계절과 주제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국내외 좋은 작업 선보이는 작가님들과 함께하게 돼서 더 기쁩니다. 아트조선스페이스에 방문해 작품과 공간을 어떤 식으로 선보여야 할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나비드 누르 색을 주제로 한국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색과 회화의 역사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더욱 뜻깊습니다.
 
이영림, Mutuals, 2023, acrylic on canvas, 132×54×34cm. /작가 제공
이영림, Mutuals, 2023, acrylic on canvas, 132×54×34cm. /작가 제공
이영림, Mutuals, 2023, acrylic on wood, 38×54×34cm. /작가 제공
이영림, Mutuals, 2023, acrylic on wood, 38×54×34cm. /작가 제공
 
─색채는 그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 중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작가님의 작품 안에서 색은 어떤 역할을 가지나요?

이영림 
저의 직관적인 부분이 색으로 표현되는 듯합니다.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많은 걸 쏟아냅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같아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작품이 완성될수록 가능성은 좁혀지고 화면은 색으로 서서히 덮여갑니다.

나비드 누르 우선 첫째는 가깝게, 또 멀리서 작품을 보는 것입니다. 노란색과 파란색 조각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걸 가까이서 보면 각각 분리된 색상입니다. 그러나 아주 멀리서 보면 점묘법처럼 색이 겹쳐지며 녹색을 띠게 됩니다. 그래서 제 패널은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색채가 다릅니다. 또 두 번째로는 작품의 색이 빛을 받아 전시장 벽면에 어떻게 반사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유는 패널 옆면에 있습니다. 이 부분을 형광색으로 채색해 빛을 받으면 흰 벽면에 형형색색의 빛이 발산되도록 의도했습니다. 때문에 2차원 그림보다는 패널 옆면까지 공간적으로 작용하는 3차원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나비드 누르, Mono no aware ness, 2010-2024, mixed media on stainless steel panel, 21×16cm.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 Mono no aware ness, 2010-2024, mixed media on stainless steel panel, 21×16cm.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 Mono no aware ness, 2010-2024, mixed media on stainless steel panel, 22×16cm.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 Mono no aware ness, 2010-2024, mixed media on stainless steel panel, 22×16cm. /작가 제공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기준에 따라 색을 선택하시나요?

이영림 색을 정하는 기준은 따로 없습니다. 때로는 고전 문학에서, 자연에서, 영화나 패션 같은 매체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죠. 또 가끔은 엉뚱한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놓고는 해요. 공사장이나 빛바랜 천막 같은 것을요. 얼마 전에는 한강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수면 위에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얼음을 봤습니다. 그 장면 또한 제게 영감이 돼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Blue Shades’ 시리즈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나비드 누르 색이 보여지는 거리와 각도를 고려합니다. 색의 온도에 따라 얼마나 가깝고, 멀어질지 고려합니다. 또, 작품을 볼 때 눈은 멈춰있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패널 위를 움직이죠. 따라서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색에 따라 시선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고민하고 동시에 직관적으로 색을 선택합니다.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136×94cm.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136×94cm.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99×73cm.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99×73cm.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130×193cm.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2024, acrylic on canvas, 130×193cm. /작가 제공
 
─작가님께서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작업을 이어오며 여러 변화를 겪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이영림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죠. 전공도 인지심리학과 가구디자인을 거쳐 미술을 전공했으니까요. 언뜻 보면 다른 듯한 이 전공들도 사실은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선보이는 작업 역시 작품과 실제 공간을 함께 고려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을 걸었을 때 전시장 빈 배경이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여백 또한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비드 누르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도구, 물의 종류, 방법론적인 접근이나 스테인리스 패널까지도요. 그렇게 많은 작업 방식을 지나오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마한다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저만의 가치관을 가꿔 나간다면 작업 방식에 관한 모든 요소가 완벽히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영림, ‘Blue Shades’ 설치 전경. /작가 제공
이영림, ‘Blue Shades’ 설치 전경.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 Wind Map, 2022, mixed media, 40×30×4cm. /작가 제공
나비드 누르, Wind Map, 2022, mixed media, 40×30×4cm. /작가 제공
 
─나비드 작가님의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형상이 있습니다. 마블링 같기도 하고 여러 선의 집합 같기도 한데, 본래 이 형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나비드 누르 내면의 나침반을 의미합니다. 마치 물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고 방향을 정하는 것처럼 저는 수면에 물감을 풀어놓고 패널에 입힙니다. 물을 움직이며 물감의 형상을 조종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사전에 메모를 하기도 합니다. 그 위에 “오늘은 이러한 방식으로 움직일 예정이다”라고 글을 적습니다. 저는 이 메모를 ‘바람 지도’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번 전시 공간에서도 ‘바람 지도’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영림 작가님께서 공간과 회화를 함께 고려하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영림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마치 그림 같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풍경은 3차원인데 2차원인 그림처럼 느껴지는 경험이, 실제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 작품을 전통적 회화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회전문이었는데 문이 회전하면서 공간 안쪽의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그 순간 ‘이게 회화다!’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시 공간 자체를 거대한 페인팅으로 여겼는데요. 저에게는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전시 또한 작품이 놓이는 위치와 간격과 동선을 모두 고려해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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