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23 17:53
성균관대박물관 ‘성균관의 보물’展 개막
한국 도자와 매칭된 포스트 단색화
김근태·김택상·김춘수·박종규



“전통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활동 중인 문화적 힘으로 보아야 한다.” 영국 문예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말처럼 과거에 형성된 문화 예술의 힘은 사그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와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으로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예술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안현정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실장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 한국 전통 도자와 한국 현대 추상화를 함께 병치함으로써 한국미의 다층구조를 보여주는 자리 ‘성균관의 보물’전(展)을 기획했다. 후기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4인 김택상, 박종규, 김근태, 김춘수의 회화를 각각 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등 성균관대박물관 소장 유물과 나란히 내걸어 서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싱크력’을 보여준다.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신성이 세대를 넘어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내재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김택상, 박종규, 김근태, 김춘수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 단색화를 전개해 오고 있는 주요한 작가들로, 표면 중심인 서양의 회화와 달리 겹칩과 스밈의 정제된 변주 속에서 한국 전통미에 근거한 다층의 레이어를 작품의 방법론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지니면서 면화(面畵) 중심의 모노크롬 페인팅과는 구별된다. 동시에, 마치 도자기의 유약과 어우러진 한국토양의 바탕을 층으로 쌓듯 미묘하게 겹치고 스미는 현상이 물질 시대 속에서 추구해 온 정신주의의 깊이를 다루는 듯하다.
이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대동여지도’의 신유본(1861) 22첩을 입체적으로 세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지난 3일 보물로 지정 예고된 ‘근묵(槿墨)’과 위창 오세창 서거 7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유물들도 공개되는 등 층층이 쌓인 문화재를 어제와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안현정 학예실장은 “전통 예술혼의 철저한 인식과 연구는 현대 예술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예술의 민족적 정체성과 보편적 다양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자기 민족의 예술적 전통과 시대정신 그리고 현대적 예술표현을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예술의 새로운 전통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2024년 3월 31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박물관.